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 기자회견장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을 앞두고 참석자들이 자리에 앉고 있다. 왼쪽부터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공동취재사진
“이번 건(박원순 전 시장 성추행) 관련, 후보자는 성추행 의혹 부분에 대해서 경찰 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
“피고소인이 사망을 해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관련 규정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조치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
“정범(피고소인)이 사망하면 방조범만 수사할 수 있냐는 문제는 법리적 논란이 있다. 후보자의 입장과 계획을 말해달라.”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
“방조범 수사와 관련해서 법 규정이나 이론이 갈리고 있지만 법 규정 한도 내에서 경찰이 철저히 수사해서 진상 규명될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 -7월20일,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가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것처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강제추행(성추행) 피소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료될 예정입니다. 피고소인 또는 피의자의 죽음은 대표적인 공소 기각 사유입니다. 고소 내용의 실체를 재판을 통해 규명해야 하지만 진실을 다툴 두 축(고소인과 피고소인) 중 한 명이 없어 재판으로 범죄의 실체를 밝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시장 비서실 내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알고도 방조하거나 묵인한 혐의가 있었는지에 대해 계속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공소권이 없어져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성추행에 대한 ‘방조’, ‘묵인’ 행위를 판단할 수 있는 걸까요? 실제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은 이에 대해 “수사를 하면서 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기자: 결국은 (강제추행) 행위가 있었다는 게 사실로 확인이 돼야 방조 행위까지 성립되는 거 아닌가? 수사에서 결론을 내리려면 성추행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판단하는 것인가?
경찰 관계자: 그 부분은 일부 법령이라던지 기타 이론상 수사 가능성, 처벌 등에 대한 입장이 나눠지고 있다. 방조(혐의) 고발이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기타 법령 위반 여부도 방조 수사를 하면서 검토할 예정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압수수색영장 등 강제수사를 동원해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사실관계가 밝혀질 수 있고, 또 그런 사실을 확인해야 될 필요성도 있다고 판단된다.
-7월21일, 서울지방경찰청 기자간담회
경찰의 설명을 보면, 수사 가능성이나 처벌 여부 등에 대해선 법적 해석이 갈리는 부분이 일부 있지만 수사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2인자인 차장을 팀장으로 하는 수사전담 티에프(TF)를 격상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를 방증합니다.
정말, 피고소인이 숨져 고소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데도 경찰은 수사를 계속할 수 있을까요? 이를 통해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 있을까요?
<한겨레>가 이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 네 명에게 수사 가능성과 전망을 물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만장일치로 “방조·묵인 혐의를 수사하는 것 자체는 이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피고소인이 숨졌어도 고소 사건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건의 실체는 남아있기 때문에 관련된 사람이 있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의견과 “공범의 세 가지 사유로 꼽히는 공동정범, 방조, 교사에 해당하면 정범(피고소인)이 없더라도 수사가 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다만 실제로 수사당국이 방조 혐의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사건의 실체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점치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론적으로 수사는 가능하지만 실제 수사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방조 혐의 수사를 통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는 쪽에서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인 이춘재(57)씨에 대한 수사를 예로 들었습니다. 경찰은 지난 2일 “이춘재가 14명을 살해하고, 9명을 성폭행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씨가 첫번째 살인 범죄를 저지른 지 34년 만입니다. 범행의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안이었지만 경찰은 이와 상관 없이 수사를 진행하고 진실을 밝혀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최근 법학계에선 ‘공소시효와 관계 없이 실체적 진실이 중요하며 기소 여부와 상관 없이 진실을 밝히는 것이 수사’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절차적으로 논란은 있겠지만 방조와 관련된 수사를 하고 처벌하려면 성추행 의혹의 진상이 간접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 고소 사실의 실체는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이춘재가 살해 사실을 자백한 ‘화성 실종 초등학생’의 유가족이 7일 오전 실종 당시 피해자의 유류품이 발견된 경기도 화성시의 한 공원에서 헌화를 한 뒤 울먹이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들은 수사 자체에 이론적인 문제는 없더라도, 박 전 시장의 사건을 실체를 밝히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봅니다. 방조 혐의가 성립하려면 관계자들이 성추행 사실을 인지하고도 묵인함으로써 박 전 시장의 (아직 입증되지 않은) 성추행을 도운 정황이 확인돼야 하는데, 현재로선 드러난 부분이 없고, 앞으로의 수사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수사의 초점도 서울시 직원들의 ‘성추행 사실 사전 인지 여부’에 맞춰질 것으로 보입니다. 고소인 쪽에서도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여기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증거에 대해선 ‘2차 가해’를 우려해 공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피해자는 성고충을 인사담당자에게 언급하기도 했다. 동료에게 불편한 내용의 텔레그램 내용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속옷 사진도 보여주면서 고충을 호소했다. 그러나 ‘30년 공무원 생활 편하게 해줄 테니 다시 비서로 와달라. 몰라서 그랬을 것이다. 이뻐서 그랬겠지. 시장에게 직접 인사 허락을 받아라’ 등이 피해자에게 돌아온 대답들이었다. 성고충, 인사고충을 호소해도 피해자 전보조치를 취하기 위한 노력을 안한 점이 있다. 성적 괴롭힘 방지를 위한 적극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시장에게 인사 이동 관련 직접 허락을 받으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피해자 쪽 김재련 변호사) -7월22일, 2차 기자회견
서울시에선 피해자 쪽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면서 방조한 사실이 없다고 맞서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피해자 쪽의 기자회견이 있었던 날, <한국방송>(KBS)은
9시뉴스에서 “인사담당 기간에는 (피해자 쪽) 전보 요청이 없었다. 그 전에도 비서실 내에서 전보 요청했다는 말이나 소문을 들은 바 없다”는 한 비서관의 인터뷰를 보도했습니다.
현재까지 방조·묵인 혐의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크게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서울시청 등에 대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이 22일 법원에서 기각됐습니다.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대상은 시장실과 비서실이 있는 시청 6층, 박 시장이 숨진 곳에서 발견된 개인 휴대전화 한 대였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영장 기각 사유로 “피의자들에 대한 범죄혐의사실의 소명 부족, 범죄혐의사실과 압수·수색할 물건과의 관련성 등 압수·수색의 필요성에 대한 소명 부족”을 들었습니다. 경찰은 보강수사 등을 통해 재청구 여부를 검토하고, 계속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법원에 제동이 걸린 모양새가 됐습니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이 22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의혹 관련 피해자 지원 단체 2차 기자회견에 대한 서울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들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은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이어서 수사가 어렵더라도 계속 할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에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했는데 문제를 해결할 지위에 있는 사람이 묵살했다 해도 현재로선 ‘직무유기’ 정도로 볼 수 있지 않겠나 싶다. 그러나 진실을 완전히 밝히기는 어렵더라도 왜 서울시청 내에서 아무런 조치가 없었고,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았는지는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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