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연인의 동의를 받아 신체 부위를 촬영한 경험이 있어도 이를 몰래 찍으면 불법 촬영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등의 혐의로 기소된 남성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ㄱ씨는 2017∼2018년 6차례에 걸쳐 자신의 휴대전화 카메라로 잠든 연인 ㄴ씨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ㄱ씨는 2018년 8월 ㄴ씨를 폭행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히고 병원에 가겠다며 집밖으로 나가려는 ㄱ씨를 감금한 혐의도 받았다. 쟁점은 연인 관계인 두 사람이 평소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을 많이 해온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를 불법 촬영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1·2심은 ㄱ씨의 상해 및 감금 혐의 등만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평소 명시적·묵시적 동의 하에 많은 촬영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ㄱ씨가 ㄴ씨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봤다. ㄱ씨가 사진 촬영 전에 ㄴ씨로부터 명시적 동의를 받지는 않았으나 평소 ㄱ씨가 ㄴ씨의 신체를 촬영했을 때 분명하게 거부하지 않았고 은연 중에 동의를 했다는 점 등을 무죄의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ㄱ씨가 촬영한 사진은 모두 나체로 잠을 자는 ㄴ씨의 신체를 촬영한 사진이고 ㄴ씨는 사진을 촬영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ㄱ씨의 행위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 것에 해당한다”며 불법촬영 혐의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이어 “ㄱ씨는 ㄴ씨로부터 신체 촬영 영상을 지우라는 말을 들어온 점, ㄴ씨가 자는 상태에서 몰래 나체 사진을 촬영한 점 등을 고려하면 ㄱ씨도 사진을 촬영하면서 ㄴ씨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다는 미필적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며 “ㄱ씨가 나체 사진을 유포할 목적이 아닌 단순한 호기심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범죄의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고 덧붙였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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