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박사방’의 범죄집단조직죄 적용 모델이 된 ‘중고차 불법 판매 사기단’이 ‘범죄집단’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같은 죄명으로 기소된 ‘박사방’ 일당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0일 중고차 판매업체 대표 전아무개씨 등 22명의 상고심에서 범죄단체조직∙가입·활동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전씨 등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인터넷 누리집에 허위 또는 미끼 매물을 올려 계약한 뒤 “차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며 다른 중고차를 시세보다 비싸게 떠넘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전씨는 구인광고 등을 통해 모집한 조직원들에게 범행수법을 알려준 뒤 팀장, 판매원, 전화상담원 등 역할을 맡겨 기여 정도에 따라 약 11억800만원의 범죄수익을 나눴다. 이들은 수사기관 추적을 피하려고 텔레그램 등을 통해 지시했고 탈퇴하려는 조직원에게 “중고차 관련 일을 못 하게 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검찰은 △전씨가 인천 동구 등에 각각 무등록 중고차 판매업체를 열어 조직원들을 모집했고 △각 팀장과 팀원이 직책에 따른 역할이 있었고 △수익배분 체계를 갖춘 점 등을 들어 전씨에게 형법 114조의 범죄단체조직죄를, 나머지 조직원들에게 범죄단체 가입·활동죄를 적용했다. 형법 114조에서는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 또는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람”은 범죄단체조직 등 혐의로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텔레그램 ‘박사방’ 수사팀도 지난 6월 이 사건을 참고해 운영자 조주빈(25)씨와 공범들에게 같은 죄명을 적용해 추가 기소했다.
그러나 1심은 사기죄를 인정했지만 범죄단체조직·가입·활동 부분은 무죄로 봤다. 대표·팀장·팀원으로 역할이 분담돼 있으나 대체로 친분관계일 뿐 지휘체계가 갖춰져있지 않다는 취지였다. 이에 검찰은 2심에서 ‘범죄단체’보다는 조직력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범죄집단’으로 볼 수 있다는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했지만 항소심 결론도 무죄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범죄단체에 해당하지 않으나 범죄집단에는 해당한다”며 1·2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형법에서 정한 ‘범죄집단’이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범죄를 수행한다는 공동의 목적 아래 구성원들이 정해진 역할분담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범죄를 반복적으로 실행할 조직체계를 갖춘 결합체를 의미한다”며 “‘범죄단체’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통솔 체계’를 갖출 필요는 없지만, 범죄 계획과 실행을 용이하게 할 정도의 조직적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봤다. 이어 중고차 불법판매 사기단이 “대표, 팀장, 출동조, 전화상담원 등 정해진 역할분담에 따라 행동해 사기범행을 반복적으로 실행하는 체계를 갖춘 결합체, 즉 범죄집단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직원들의 수, 직책 및 역할분담, 범행수법, 수익분배 구조 등에 비춰 이들이 사기범행이라는 공동의 목적으로 일했다고 본 대법원 판단은 같은 죄명으로 추가 기소된 ‘박사방’ 공범들의 재판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조씨의 공범들은 법정에서 “범죄집단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취지로 주장하며 범죄집단가입∙활동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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