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의사 2차 총파업 첫날인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의료진이 벗어놓은 가운 뒤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이 아플 땐 의사도 아파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 아픈 적이 있을까요. 이럴 땐 화가 나도 모든 걸 버리고 환자들 곁에서 같이 아파해야 합니다. 덩그러니 벗은 가운을 보면 환자들은 더 아프지 않을까요.”
전국 의사 집단휴진 이틀째를 맞은 27일 김동은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는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다. 대구에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됐던 지난봄 임시 선별진료소 현장을 지켰던 그는 최근 동료 의사들의 집단휴진 사태를 지켜보며 마음이 어지럽다고 했다. 의료진이 국민에게 얻은 신뢰가 모두 소진된 듯해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는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대신해 응급실 당직을 맡으며 여전히 코로나19 최전선을 지키고 있다.
26일 정부가 업무 복귀명령을 내렸지만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내는 등 정부와 의사 간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인턴부터 대학교수까지 대다수의 의사들이 정부 정책에 반발하며 집단휴진을 지지하지만, 이들과 달리 ‘지금은 현장을 지킬 때’라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가 대표적이다. 인의협 공동대표인 이보라 녹색병원 의사는 “치킨게임 하듯 이어지는 ‘강대강’ 상황에서는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도권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파업으로 국민에게 불안감만 주며 실질적인 의료 공백을 가중시키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집단휴진 사태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명분’을 떠나 ‘시기와 방법이 틀렸다’고 비판했다. 유영진 상계백병원 교수는 “이번 정부안이 의사들 미래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불안한 전공의들의 입장은 이해하나 길거리로 나서는 방식으론 안 된다”고 말했다. 집단휴진이란 방식 자체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박태훈 전 상계주민의원 원장은 “20년 전 의약분업 사태 때 의사들이 파업에 나섰다가 국민의 불신만 얻었다. 정책에 기반한 논의와 토론 대신 무작정 파업부터 하는 건 전문가로서의 신뢰를 깎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안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이보라 대표는 “의대 증원엔 동의하나 정부의 증원안 자체는 상당히 미흡하다. 공공성 확대라는 계획 아래 의사 증원 논의가 필요한데 증원안을 졸속으로 내놔 ‘밥그릇’ 문제처럼 됐다”고 꼬집었다. 김동은 교수도 “정부는 10년 뒤에나 효과가 나올 의사 증원보단 중환자실·공공병상 확충 등을 먼저 제시했어야 했다. 디테일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들은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멈추고 국민과 정부를 대상으로 대화에 나설 때라고 입을 모았다. 유영진 교수는 “휴진사태가 끝나는 금요일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모두를 포함한 대화가 시작돼야 한다”고 짚었다. 김동은 교수는 “의료정책은 정부와 의사, 시민이 함께 만드는 것”이라며
“국민과 보건의료 전문가, 정부가 함께하는 제3의 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보라 대표는 “파업 중단이 당장은 정부에 지는 것처럼 보여도 크게 봐선 국민을 의사들의 편으로 만드는 길”이라고 말했다.
전광준 박윤경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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