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달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거센 바람이 훅 불어닥치자 오토바이가 휘청였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거리를 달리던 배달노동자 김아무개(50)씨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오토바이를 세웠다. 태풍 ‘바비’가 한반도에 상륙한 이날 서울 지역 최대 순간풍속은 초속 25.9m로 나타났다. 위협적인 태풍이 북상한다는 소식에도 도로 위에선 김씨 같은 배달노동자들이 쉴 새 없이 달리고 있었다.
이날 쿠팡의 배달 중개 플랫폼 ‘쿠팡이츠’ 소속인 김씨는 회사로부터 사전에 어떤 안내도 받지 못했다. 되레 전날 오후 사쪽은 배달노동자들에게 ‘26~27일 저녁 15건 이상 배달하는 경우 5만원을 추가로 주겠다’는 행사 안내까지 보냈다. 태풍 예보로 전국에 비상이 걸렸는데도 인센티브까지 걸고 배달 참여를 독려한 것이다. 다행히 태풍 피해는 예상보다 적었지만, 김씨는 27일 <한겨레>에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도 없이 회사가 ‘태풍 이벤트’를 벌였다. 기상이 많이 안 좋을 경우 단거리만 배달하는 등의 조처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제8호 태풍 '바비'가 서해상을 통과하는 동안 시설물 안전조치 50건을 처리했다고 27일 밝혔다. 전날 저녁부터 이날 새벽까지 강풍이 불면서 시내 곳곳에서 가로수와 버스정류장 안내표지판이 쓰러지고 옥탑방 지붕이 날아가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사진은 강풍에 쓰러진 가로수. 서울시 제공.
폭우나 태풍 등 이상기후 현상이 잇따르는 가운데 배달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안전지침도 없이 배달에 나서고 있어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의 ‘이륜차 음식배달 종사자 보호를 위한 안전가이드라인’에선 호우경보나 대설경보 등이 발령되면 배달을 금지하고 강수량별 배달 거리를 1~1.5㎞ 이내로 제한하라고 권고한다. 그러나 의무가 아닌 권고일 뿐이다. 오토바이 운전에 영향을 미치는 강풍특보 등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이에 배달노동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태풍 전후 일부 배달 플랫폼 업체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한 이용자는 “태풍 올 때 일하면 보너스를 준다고 하는데 목숨 걸고 하라는 것인가”라고 분노했다. 또 다른 사용자는 “태풍이고 목숨이고 간에 돈이면 다 되는구나”라고 글을 올렸다. 배민·요기요 등은 라이더 운영을 축소하는 등 현장 지침을 낸 상태여서 비판은 주로 쿠팡이츠에 몰렸다. 쿠팡이츠 관계자는 “25일 보낸 안내는 일상적인 행사 안내였다. 태풍 상황을 고려해서 배송 제한 문자와 안전 관련 문자도 보냈다”고 해명했다. 쿠팡이츠가 배송 제한 등의 안내를 한 것은 26일 저녁 7시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은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날씨가 나빠졌을 땐 배달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배달 서비스) 운영을 중지하는 등 적절한 규제 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