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원대 뇌물 혐의, 성접대 혐의와 관련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해 11월22일 오후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석방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3월 성접대 의혹 등이 불거져 9일 만에 면직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7년 만에 일부 뇌물죄가 인정돼 법정구속됐습니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지난 28일 특정범죄가중법 위반(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법무부 차관에게 무죄 또는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2년6개월과 벌금 500만원, 추징금 43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혐의는 김 전 차관이 2000∼2011년 건설업자 최아무개씨에게 받은 5100만원 가운데 4300만원이었습니다. 유·무죄 판단을 가른 주요 쟁점은 ‘구체적 대가성’ 여부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최씨가 시행사업을 계속하다가 검찰 특수부의 조사를 받을 경우 김 전 차관이 담당 검사 등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사건을 해결해주는 대가로 뇌물을 건넸다고 봤습니다. 핵심적 판단 기준은 최씨가 검찰 조사를 받게 돼 김 전 차관이 이를 해결해준 현안이 실제 존재했는지가 아닌 최씨에게 ‘구체적 기대감’이 있었는지, 김 전 차관도 이를 인식했는지였습니다.
최씨가 ‘막연한 기대감’이 아닌 ‘구체적 대가성’으로 뇌물을 건넸는지를 따지기 위해 재판부는 두 사람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봤습니다. 최씨는 1992년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같은 경기고 출신이 주축이 된 친목모임에 참석했다가 김 전 차관을 알게 됐습니다. 그 뒤 최씨는 1998년 자신의 시행사업을 담당한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되자 현직검사인 김 전 차관을 통해 수사 진행 상황을 확인하며 가까워졌습니다. 최씨는 법정에서 “너(최씨)도 대상자인 것 같다”며 김 전 차관에게 전화가 온 당일 자신의 사무실 압수수색이 이뤄졌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는 같은해 이 사건이 확정판결이 난 뒤 최씨가 김 전 차관에게 차명 휴대전화비, 현금, 법인 카드비, 술값 등을 건넨 계기였습니다.
재판부는 “최씨가 김 전 차관에게 뇌물을 준 기간에 알선으로 해결해야 할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김 전 차관에게도 (최씨가 검찰 조사를 받게 될 경우) 다른 검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했습니다. 그 근거로 김 전 차관이 2006∼2012년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성접대와 뇌물을 받다가 윤씨나 그의 지인들이 형사사건에 연루되자 이를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관여해 온 점 등을 꼽았습니다. 재판부는 김광준 부장검사 사건 등 ‘스폰서 관계’가 인정돼 유죄 판단을 받은 다른 사건들과 견줘 김 전 차관의 영향력, 두 사람이 만난 경위, 뇌물을 건넨 경위 등에 ‘구체적 대가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김광준 부장검사는 초등학교 선배인 사업가 이아무개씨에게서 자신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등이 잘 처리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10차례에 걸쳐 48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재판부는 “최씨가 김 전 차관의 차명 휴대전화비를 대납하긴 했지만 비교적 소액이어서 대가성이 없다”는 취지의 1심 판단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짚었습니다. 사행성 게임기 사업자가 경찰에게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며 6개월 동안 휴대전화비를 대납해준 사건에서 이를 모두 뇌물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2007도10884)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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