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촛불청소년연대 18살 선거권 온라인 발표회 “변화 이뤄졌다”는 의견 다수 “청소년 낮춰보는 인식은 여전” 지적도
지난 2월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18세 이상 선거권 확대를 알리는 펼침막을 게시한 서울 종로구 대학로 동성고 앞으로 고등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전까지 공약에 대해 큰 관심도 없었고 추상적으로만 알았어요. 늘 부모님의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니까 부모님 영향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내 목소리를 찾는 것, 내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정당을 찾는 데 더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이런 변화들을 보면서 사회 구조가 나를 미성숙한 존재로 만들었던 거지, 내가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었단 걸 알게 됐어요.” (오연재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고3)
올해 4월 총선은 선거권 연령을 만 19살에서 만 18살로 낮춘 선거법 개정에 따라 역사상 처음으로 18살 ‘청소년 유권자’ 54만8986명이 등장한 선거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1대 총선 투표율 최종 분석 보고서를 보면 18살 유권자 투표율은 67.4%로 전제 투표율(66.2%)를 웃돌았다.18살 투표율은 20대(58.7%) 30대(57.1%) 40대(63.5%)보다도 높았다. 선거에 참여하며 처음 유권자로서의 경험을 한 청소년들 사이에선 “투표소를 넘어 학교·정당 등에서도 청소년은 ‘들러리’가 아닌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5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만 18살 선거권 도입 1년을 맞아 온라인 발표회를 열고 청소년 19명과 청소년 정책 관계자 13명을 심층 면접한 연구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18살 선거권 도입이 실제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청소년 권리 보장을 위해 선거권 연령 하향 외에도 어떤 과제가 필요한지 등의 내용을 담았다.
조사에 참여한 청소년들 다수는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계기였다”고 입을 모았다. 고등학교 3학년 김소담양은 “마침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의 필요성을 느끼던 시기에 4월15일 이전 출생이라는 생일 기준에 들게 되어 참정권을 얻게 됐다”며 “신나는 마음으로 선거를 기다렸다”고 돌아봤다. ‘조례만드는청소년’에서 활동하는 박지혜양도 “대한민국의 첫 청소년 투표를 내가 할 수 있다니 완전 ‘땡잡았다’고 생각했다. 그간 청소년 운동에서 성공의 경험이 많지 않은데 앞으로의 운동에서도 이번 선거권 연령 하향을 원동력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조사 보고서는 18살 선거권이 청소년들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게 한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슬로건이나 공약이 너무 좋아서 그분을 뽑았어요. 근데 결국 그분이 저희 지역에서 안 됐는데, 근데 그분이 높은 지지율을 받아서 다음엔 더 열심히 하겠다고 플래카드를 거신 거예요, 마을에. 근데 그걸 보는데 마음이 진짜 이상하더라고요. 왜냐면 내가 뽑았던 사람인데, 그렇게 걸리니까 마음이 진짜 확 투표인으로서의 그게 느껴지고. 한 번 기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황유빈·서울·고3)
“정치권에서도 청소년의 표를 겨냥해서 청소년에게 좋은 정책들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뭐 청소년들을 위한 시설을 늘려준다거나 아니면 학교들의 오래된 규정에 대해서 제도를 만들어준다거나.”(박상훈·서울·고2) 보고서는 “다음 선거에서는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킬 힘, 다음을 기대할 수 있는 제도적 권한이 여전히 나에게 있음을 발견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는 18세 선거권 획득 이후 유권자가 된 청소년들이 지지했던 후보의 당락과 상관없이 가지게 된 일종의 ‘정치적 효능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18살 선거권은 ‘어른들’의 생각도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선생님들이 긴장도가 높아졌다.(…) 불편해지는 것이지만 중요한 자극이라고 생각한다. ‘아 얘네가 투표권이 있네? 그러면 지금처럼 애 취급을 할 수는 없네? 현재의 시민이라는 게 진짜네?’ 이런 것들에 대한 얘기가 시작되면서 어떤 종류의 불편함이 시작된 것이다. (…)긍정적인 변화일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선거연령이 내려가고 이 아이들은 전체 사회에서도 하나의 선거권자로서의 지위를 받게 된 거니까 좋든 싫든 간에 주권자로서의 행위를 할 수 있게끔 교육을 해야 되는 그러한 여건이 강제적으로 마련된 것 같아요.”(윤은진·학교시민교육전국네트워크)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5일 진행한 온라인 발표회.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유튜브 갈무리
청소년들은 “선거권 부여와는 별개로 청소년을 향한 차별적 인식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강원 원주시에서 청소년과 지역구 의원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서한울군은 “‘열심히 살아라’는 등 우리를 유권자가 아니라 자식 대하듯이 말하는 후보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청소년분과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김가진씨도 “정치인을 만나려고 2∼3시간 구두 신고 기다렸지만 만남은 10분 만에 끝났다”며 “(정당 내 청소년은) 낮은 취급을 하고 챙겨주지는 않는 ‘내버린 자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것들이 지금 정치의 한계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유권자로서의 지위를 가졌지만 여전히 미숙한 존재로 취급받는 괴리도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민이라는 게 우리 사회의 정책 같은 데 참여하는 정치적 권한이 있는 거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근데 저희한테는 ‘청소년이니까 안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청소년도 시민이라고 하고. 이게 무슨 모순인가요?”(김원철·인천·고3) 최유경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가도 “학교에서 학생에게 주는 권리가 부재한데 시민에게 주는 권리를 부여했을 때 충돌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지난 10월 청소년 5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 51.7%가 코로나19로 인한 등교나 수업 방식 변동에 대해 의견을 내지 못했고, 제대로 설명조차 듣지 않았다고 답한 바 있다.
‘학생은 정치하면 안 된다’와 같이 학교 현장에서 정치적 중립을 기계적으로 요구하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령 학교에서 실제 후보를 대상으로 선거를 진행해보는 모의선거 교육은 ‘편향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는 보수단체 반발에 줄곧 부딪혀왔고, 지난 1월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검토가 필요하다며 제동을 걸었다. 남미자 경기도교육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교육 현장에서 현실 정치를 다루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치적인 것”이라며 “학생과 교사가 사회구조 등을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피선거권 및 민사소송·헌법소원에서의 연령 하향과 청소년 차별적 학칙 개정 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바로가기:‘18세 선거권 시대, 청소년은 어떻게 시민이 되는가’ 온라인 발표회https://youtu.be/f1mJ7y-n-bg18살도 유권자, 그러니 들어라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83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