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법원의 직무정지 효력 집행정지 결정으로 대검찰청에 출근한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그리고 이에 대한 불복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총장이 맞선 법적 쟁송의 승자는 윤 총장이었다. 자신이 주도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 사건 수사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데 이어 징계 집행정지까지 받아낸 윤 총장은 복귀 뒤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의 임기는 이제 7개월 남았지만 징계의 부당성을 확인받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실린 상태다. 윤 총장은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한달여 만에 착수한 ‘조국 가족’ 수사로 여권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상징적 인물인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로 문재인 정부와 윤 총장의 밀월 관계는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결국 조 전 장관 부부를 기소했지만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신임도 잃었다.
조 장관 후임으로 취임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관계는 악화일로였다. 장관과 총장의 인사 협의는 사라졌고 추 장관은 인사 정상화를 명분으로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지방으로 흩뿌리며 그의 손발을 잘랐다. 감찰권을 수단으로 검찰 내부 비위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윤 총장과 충돌도 잦아졌다. 윤 총장도 추 장관의 공격에 대응하며 ‘검·언 유착’ 의혹 수사를 방해하는 등 무리수를 여럿 뒀다. 지난 10월 윤 총장이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정치 참여를 시사한 발언은 최대 실책이었다. 결국 추 장관은 그동안의 비위 의혹 8건을 모아 징계를 청구했고 그 결과 윤 총장은 정직 2개월 징계가 확정됐다.
법원의 이번 징계 집행정지 결정은 징계 취소를 청구한 1심 본안 소송 판결이 나온 뒤 30일까지다. 징계의 절차와 실체를 모두 다투는 사건이고 판례도 없는 상황이어서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윤 총장으로서는 임기를 채울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추 장관도 사의를 표명한 상태라서 윤 총장을 제어할 사람도 없는 상황이다. 추-윤 갈등에 대한 여론의 염증이 컸기 때문에 후임 법무부 장관도 윤 총장을 존중하며 관계를 정립할 가능성이 크다. 정경심 교수 사건 1심 판결로 수사의 정당성까지 인정받은 윤 총장으로서는 더욱 자신감 있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윤 총장 앞에 꽃길만 깔린 건 아니다. 직무복귀 뒤 대전지검의 월성 원전 사건을 지휘하며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강조하겠지만, 대검 국감에서의 정치 참여 시사 발언이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크다. ‘퇴임 뒤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약속이 없는 한, 문재인 정부와 맞서 승리한 야권 대선주자로서 인기는 더욱 올라갈 것이고 ‘예비 정치인 검찰총장’의 수사지휘는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내년 초에 출범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위험 요소다. 윤 총장이 ‘재판부 성향 분석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는 직권남용 혐의 등이 공수처 1호 사건이 될 거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정치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윤 총장이 직무에 복귀하며 판정승을 거뒀으나 이를 곧 ‘검찰의 승리’로 해석하는 건 성급할 수 있다. 윤 총장이 문 대통령과 맞서는 모습에서, 사법부 판단과 별도로 검찰에 불신과 반감을 느끼는 여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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