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주도 시대상을 반영한다. 옛날 사람들은 사주를 보러 가면 ‘언제 시험에 합격하나요’, ‘언제 취업하나요’ 같은 질문을 주로 했지만 요즘 사주를 볼 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재물운’이라고 한다. 경력 20년의 사주 상담가는 “하루에 여러명 상담을 하면 한명 이상은 꼭 주식 투자 관련 질문을 한다”고 전했다. 사주에서 말하는 재물운이란 무엇일까.
지난 31일 낮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외벽에 2021년 소의 해 신년맞이 대형 펼침막이 설치되어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년 전 사주를 보러 갔더니, 선생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첫마디부터 악담(?)을 내뱉었다. “쯧쯧, 이런 사주는 사업은 물론이고 장사도 못해요.” 모든 직장인의 관심사, 언제 돈이 잘 벌리냐 굳이 질문할 필요도 없었다. “좋으나 싫으나 월급 나오는 직장에 붙어 있으라”며 “이런 사주는 주식도 못한다”고 했다. 웬 주식? 해본 적도 없는데 못한다는 소리부터 들으니 억울한 심정이었다. 그땐 그저 내가 계속 회사에 다닐 운명인가보다 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사주가 너무 잘 맞는 것일까. 2년 전 내게 악담을 퍼부은 그 선생이 내내 생각나는 것이었다. 2020년 초 동학개미운동이란 주식 열풍에 탑승한 나는 팔자에도 없는 주식을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3월, 나는 은행에서 잠자던 예금 수백만원을 증권계좌로 옮기며 본격적으로 ‘떨어지는 칼날’을 잡았다. 연말이 되어 한해 나의 주식투자 실적을 따져보니 왜 그때 그 선생이 내게 ‘주식도 못한다’고 했는지 처절하게 공감이 갔다. 지난 3월 1400까지 떨어졌던 코스피지수가 2800을 훌쩍 넘어선 지금, 나의 동학개미운동 성적표는 처참하기 그지없다. 언택트주가 한창 오를 때 콘택트주를 사고, 다시 콘택트주가 오를 때 내 투자금은 언택트주에 물려 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적당한 인기주만 사들였어도 보통의 수익은 났을 텐데. 주식에 감이 없어도 한참 없는 거다.
명리학 공부를 해보니 내게 주식 못할 팔자라고 한 선생의 설명이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난 사주팔자에 재물운을 뜻하는 글자 ‘재성’(내가 극하는 에너지)이 없는 ‘무재(無財) 사주’였던 것이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십성(十星) 중 하나인 재성(財星)은 현실감각, 결과중심적 사고, 재물 등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 재성에도 두 개념이 있다. 정기적인 소득, 꾸준한 월급 등을 뜻하는 ‘정재’(正財)와 비정기적인 소득이나 확장적 재물을 뜻하는 ‘편재’(偏財)로 나뉜다. 자신의 사주에서 정재가 잘 작동한다면 알뜰, 성실하고 저축을 잘하며 일개미처럼 티끌 모아 재산을 일구는 스타일이다. 편재가 잘 작동한다면 시야가 넓고 배포가 크며 사업 수완이 좋다. 현대 사회에서 정재를 월급쟁이, 편재를 프리랜서나 사업가의 기질로 많이 해석한다.
나는 둘 다 없다. 재성이 없으면 돈이 되는 일을 좇기보다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일을 하게 된다.(내 사주는 늘 좋은 쪽으로 해석!) 당장 돈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거나 저축보다 현재를 즐기자는 ‘욜로 마인드’가 되기 쉽다. 대인관계에서도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아 순수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일할 때도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재물의 끝을 재단하지 않기에 정말 큰 부자, 큰 기업의 재벌 중엔 나 같은 무재 사주가 간혹 있다고는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재물을 가늠하는 감각이 그만큼 떨어지기에 주식을 하더라도 별 재미를 못 볼 가능성이 높다.
냉혹한 자본주의 시대에 재성이 없어 슬픈 사주들이여. 나 같은 무재 사주와 달리 사주에서 재성을 잘 쓰는 사람들은 똑같은 코로나19 시대라도 주식시장에서 다른 결과를 맞이한다. 정재를 잘 쓰는 사람들은 주식을 해도 일확천금 같은 수익이 아니라 매일 주식시장을 꼼꼼히 분석하고, 조금씩 분산투자해 꾸준히 차곡차곡 벌게 된다. 편재를 잘 쓰는 사람들은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투자 스타일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사주팔자에 재성이 많으면 다 좋은 것일까. 꼭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재다신약’(財多身弱)이란 개념이 있다. 많은 재성을 잘 다루지 못해 자신의 기운이 약해져버린 사주를 말한다. 오히려 재물을 잃거나 건강이 악화되는 등 좋지 않다고 해석한다.
사주를 보는 사람들의 질문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옛날 사람들은 사주를 보러 가면 ‘언제 시험에 합격하나요’, ‘언제 취업하나요’ 같은 질문을 주로 했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요즘 사주를 볼 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재물운’이라고 한다. 2019년 1월 시장조사 기업 엠브레인이 전국 19살부터 59살 사이의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운세서비스 이용 경험 및 인식 평가, ‘트렌드모니터’)에서 신년운세, 토정비결, 궁합, 사주 등의 운세서비스를 통해 가장 확인하고 싶은 내용이 뭐냐고 물었더니 ‘재물운’이 1위였다. 이 조사에서 82%가 새해 운세 서비스를 이용해봤다고 답했는데, 운세를 보게 될 경우 가장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운’은 재물운(68.7%), 건강운(50.1%), 올해의 총운(34.6%), 자녀운(24.6%), 직업운(24%), 배우자운(16.3%) 차례였다.(복수응답) ‘재물운’이 좋은지가 건강운이나 취업운보다 더 궁금한 세상이 된 것이다. 재물운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30대(72%)와 40대(72.4%)가 20대(66%)와 50대(64.4%)보다 컸다.
20년간 사주 상담을 업으로 해온 명리학자들도 요즘 고객들의 질문을 들으며 달라진 시대상을 체감한다고 전했다. <에스비에스>(SBS) 팟캐스트 ‘맹승지, 소림 쌤의 톡톡사주’로 잘 알려진 명리학자 소림 선생은 “최근 들어 손님들이 오시면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주부든 주식 투자에 대해 묻는다. 하루에 여러명 상담을 하면 한명 이상에게 꼭 주식 투자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며 “최근 들어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말했다. 선생은 “예전엔 ‘주식 웬만하면 하지 마시라’고 조언했지만 요즘은 시대 상황이 그렇지 않아 고객의 사주에 따라 적절히 조언한다”고 했다.
그의 설명으로는 일상에서 여윳돈으로 하는 소액 투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별 지장을 주지 않지만, 사주상 과감한 투자를 할 경우 좋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자신의 사주 여덟 글자에서 겁재(劫財, 사주의 십성 중 하나로 경쟁자 등을 뜻함. 재산을 겁탈해간다는 뜻)가 지나치게 강해 자신의 재물을 쉽게 빼앗기는 구조를 이뤘거나, 편재를 조율할 능력이 부족해 일확천금을 꿈꾸는 투기성에 취약한 경우 등이 그렇다. 또한, 사주팔자에서 나를 뜻하는 일간과 같은 오행이 없는 등 사주가 크게 신약(身弱)한 경우도 주식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역설적이게도 신축년(辛丑年)은 ‘흰 소의 해’다. 명리학에선 입춘을 기준으로 해가 바뀐다고 보는데, 한달 뒤인 2월3일부터 새해 신축년이 된다. 십이지의 두번째 동물인 소는 밭을 갈고 집을 지키는 근면과 성실의 상징이다. 궂은일에 인내하는 순함과 자신의 젖과 살을 내어주는 관대함을 가진 동물 소, 영성의 나라 인도에서는 흰 소를 영적인 동물로 신성히 여기기도 한다. 새해에는 작은 이익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소처럼 충실히 제 역할을 다하라는 게 명리학의 메시지인 것일까. 오늘도 나는 소처럼 우직하게 수익률 마이너스 20%인 종목들을 존중하며 버티고 있다.
봄날원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