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6개월 만에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와 꽃, 인형 등이 놓여 있다. 양평/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생후 16개월 영아인 정인이를 폭행해 숨지게 한 양어머니 장아무개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명이 넘게 동의했고 변호사단체도 장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모나 양육자의 학대로 아이가 사망했을 경우 일반적으로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처벌법의 아동학대치사죄가 적용되는 이유는 ‘고의 입증의 어려움’ 때문이다. 살인죄는 사람을 죽이겠다는 적극적인 고의 또는 ‘이러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음이 엄격하게 입증돼야 하지만,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대부분 흉기 등을 쓰지 않고 학대가 장기간 은밀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수사기관은 관행적으로 관련 범죄를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했다.
그러나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하면 양형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솜방망이 처벌’이 가능하다는 우려가 있다. 아동학대치사죄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살인죄(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와 비교해 법정형량이 가볍진 않지만, 아동학대치사죄의 양형기준은 기본 4~7년, 살인죄는 10~16년으로 차이가 크다. 가족의 선처 요구 등 감경 사유가 더해지면 아동학대치사죄의 형량은 더 낮아진다. 2015년 법원은 빵 조각을 흘렸다는 이유로 5살 딸의 배를 걷어차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아버지에게 “피고인이 직접 119에 신고했고, 아내 등 가족이 선처를 바라고 있다”며 1·2심 모두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살인죄로 기소한 사례가 없지는 않다. 2013년 울산지검은 식탁에 놓인 2300원을 가져갔다는 이유로 7살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양어머니를 살인죄로 기소했고, 항소심을 맡은 부산고법이 살인죄를 인정해 징역 18년을 선고하고 검찰·피고인 모두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비록 피고인이 피해자를 폭행할 때 흉기를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뼈와 근육 등 신체가 온전히 발달하지 못한 7살 아동에게 성인의 주먹과 발은 흉기나 다름없다. 이 사건 폭행 당시 피고인은 피해자가 사망이라는 결과에 이를 위험이 있음을 인식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2014년 생후 22개월 된 아들이 계속 운다며 폭행해 숨지게 한 어머니(징역 10년), 같은 해 25개월 된 입양 딸을 행거 지지대로 때려 숨지게 한 양어머니(징역 20년), 2016년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폭행해 살해하고 유기한 아버지(징역 30년)도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인정돼 살인죄 확정판결을 받은 바 있다.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돼 중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2013년 당시 8살이던 의붓딸을 장기간 폭행해 복막염으로 숨지게 한 뒤 질병으로 사망한 것처럼 위장한 ‘칠곡 의붓딸 학대 사망 사건’에서는 아동학대치사죄가 적용됐지만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학대로 인한 아이의 사망은 살인’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수연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아동학대치사는 (고의 없이) 아동을 학대했는데 결과적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라며 “학대 행위가 살해의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필요하고, (살인죄를 적용해) 아동학대가 얼마나 중한 범죄인지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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