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2020년 12월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판사 10명 중 9명은 대법원 정책에 반대했을 때 불이익을 우려한다.’
2017년 3월25일 서울 연세대 광복관 국제회의실. 법원 내 학술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이하 연구회)는 연세대 법학연구원과 함께 법관 인사제도에 대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 발표된 판사 502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는 사법부 안팎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인사권을 틀어쥔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가 판사의 독립성 침해, 판사 사회의 관료화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서 절반에 가까운 47%의 응답자가 ‘주요 사건에서 상급심에 반하는 판결을 한 법관은 보직, 평정, 사무 분담 등에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답한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꽤나 껄끄러워했을 법한 이 학술대회는 개최까지 여러 진통을 겪었다. 2017년 2월과 3월,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학술연구모임 중복 가입을 금지해 연구회를 와해하려 한 의혹, 연구회 소속이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이었던 이탄희 판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가 그와 관련해 부당한 지시를 받고 사표를 제출했다 반려됐다는 의혹이 연달아 제기됐다. ‘사법농단’이란 빙산의 일각이 막 드러나던 시점이다.
“제가 사직서 냈던 2017년…, 벌써 4년인가 지났는데요. 판사들에게 (학술연구모임) 중복 가입 해소 조치를 강제해서 연구회를 탈퇴하게 만드는 건 ‘권리행사 방해’라고 그 당시 판단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중복 가입 해소 조치에 관해 허위의 대응 논리를 전달하라는 (법원행정처의) 지시는 불법적인 행동에 동참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해서 하지 않은 겁니다.”
2020년 12월15일, 이탄희 의원이 2017년 2월의 일을 증언하기 위해 법정에 섰다. 피고인석에 앉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약 4년 만의 대면이다. 이날 임 전 차장의 재판에서는 사법농단의 긴 꼬리가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2017년 2월의 막전막후가 소환됐다. 이 의원은 2017년 3월 법원 진상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질 당시 작성한 자신의 ‘진술표’에 기대어 증언했다. 진술표는 ‘아무리 세세한 것이라도 생각나는 모든 걸 이야기해달라’는 진상조사위 쪽 요청에 따라 작성한 것으로, 상대방이 쓴 표현을 최대한 살리고 시점별로 달라진 자신의 기억과 감정까지 세세히 구별해 적은 것이다.
이 의원은 당시 연구회 예산을 관리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기획팀장으로 2017년 3월 학술대회 준비에 참여했다. 그해 1월15일 서울중앙지법 인근에서 연구회 운영위원회 회의가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술대회 개최 일정이 확정됐다. 그로부터 열흘 가까이 지난 1월24일, 이 의원은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전 연구회 회장)한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 의원의 진술표를 보면, 수원지법 안양지원에서 근무하던 그는 ‘전화 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일어나 달력이 있는 벽 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통화는 7분여 지속됐다.
“공동학술대회 3월로 정해졌다면서요? 이 판사님이 기획팀장이니까 주관할 텐데 철저하게 법원 내부 행사로 치러지게 해주고, 특히 언론에 보도되지 않게 해주세요. 이 판사님이 연구회에서 발언권도 있고, 영향력이 있지 않습니까.” 이 상임위원은 이 의원과 연구회 소속 송아무개 판사를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추천했다고 덧붙였다. 인사 추천은 학술대회 축소에 대한 대가 관계처럼 읽혔다. “제가 법원행정처 내부도 그렇고 여러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다들 이 판사를 좋게 이야기했습니다. 법원행정처에서 함께 일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뒤늦게 드러난 사실이지만, 당시 법원행정처는 연구회 소속 송 판사가 판사회의를 활성화하자는 건의문을 법원 내부망에 올리자 “송○○ 판사 연수기간 만료→행정처 포섭”(2016년 12월26일 이규진 상임위원 업무일지)하자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법원행정처의 사법 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를 내부자로 끌어들여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고 법원행정처 논리를 연구회에 전달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맡기려 한 것이다. 이 상임위원의 말대로, 이 의원과 송 판사는 2017년 2월 법관 정기인사에서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받았다.
그리고 2월13일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장 명의로 ‘중복 가입된 연구회는 한 곳만 남기고 탈퇴하라’는 공지가 법원 내부망에 올라왔다. 그 조치가 실행되면, 법원 학술연구모임 중 회원이 가장 많이 줄어드는 건 연구회였다(431명→204명). 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모인 크고 작은 카톡방에서 ‘연구회가 큰 어려움에 처할 거다’라는 메시지들이 들끓었다.
2017년 2월15일, 이 의원은 전임자인 임효량 심의관과 법원장 간담회를 위한 사전 답사에 나섰다. 여러 명이 차량을 타고 답사를 떠나는 길. 이 상임위원은 그런 그에게 전화를 걸어 ‘듣기만 하라’고 말한 뒤 중복 가입 해소 조치로 당황하는 연구회에 법원행정처의 대응 논리를 전달하라고 주문했다. 법원행정처에서 일하게 된 이 의원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기조실 컴퓨터에 판사들 뒷조사한, 비밀번호 걸려 있는 파일이 있는데 보고 놀라지 마라”고 말한 바로 다음날이다. 연구회 판사 포섭, 중복 가입 해소 조치라는 탈을 쓴 연구회 와해 시도, 그리고 판사들 뒷조사 파일의 존재까지…. 임 심의관은 앞선 법정 증언에서, 이 의원이 답사 가는 차에서 ‘내가 왜 법원행정처에 왔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했다.
이 의원은 그날 임 심의관과 법원행정처의 연구모임 중복 가입 해소 조치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임 심의관은 이렇게 말했다. ‘중복 가입 탈퇴 조치는 연구회를 대상으로 한 게 맞다.’ ‘블랙리스트 프레임에 들어가면 다 끝장이다.’ 연구회에 적대적인 법원행정처 정책이 외관상 문제없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상자에게 불이익을 줬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이 의원은 법원행정처의 논리를 연구회 쪽에 전달하지 않았다. “들으면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게 (논리에) 섞여 있었는데, 그걸 전달해서 상대방이 믿게 만들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다.
이 의원은 2월16일 법원행정처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 이유는 이렇게 밝혔다. “법원행정처 실상이 내가 생각하기에 법관 윤리 유지하며 근무할 게 아니라는 판단이 든다.” 임 전 차장에게 득달같이 전화가 걸려왔다. 이 의원의 진술표에 적힌 당시 통화 내용 일부다.
“중복 가입 탈퇴 조치가 국제인권법을 타게팅한 정책이라고 임효량 심의관에게 들었습니다.”(이 의원)
“그 책임 50% 인정합니다.”(임 전 차장)
“이규진 위원이 인권법에 개입하는 지시를 했습니다.”(이 의원)
“그건 제 책임이 아닙니다.”(임 전 차장)
“저를 데려올 때부터 연구회 관련 부수적 목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일석이조?”(이 의원)
“그래요, 일석이조.”(임 전 차장)
임 전 차장은 이 의원과의 통화에서 “왜 법원행정처가 인권법(연구회)을 와해시키려 하느냐”는 질문에 거꾸로 “인권법이 법원행정처를 와해시키려 한다”고 답했다. 임 전 차장은 법정에서 ‘그렇게 말한 기억이 없다’고 반박했다. ‘일석이조’라는 말도 꺼낸 적 없다고 부인했다.
그 뒤는 익히 알려진 대로다. 3월6일 언론 보도를 통해 법원행정처의 연구회 탄압 의혹이 알려지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판사회의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대법원은 내부 진상조사를 진행했다. 임 전 차장은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2020년 12월23일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왼쪽 둘째)과 4·16가족협의회, 4·16연대가 국회 분수대 앞에서 “‘사법농단’ 사태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임성근·이동근 판사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은 1차 진상조사를 벌여 연구회를 견제하기 위해 사법행정권이 남용됐다고 판단했으나, ‘판사 뒷조사 파일’이 저장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컴퓨터는 조사조차 못 했다.(2017년 4월18일) 추가 조사에서 판사 뒷조사 문건이 발견됐고, 3차 조사까지 진행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찰 문건은 있었지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블랙리스트 문건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2018년 5월25일) 재판 거래, 재판 개입을 의심케 하는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이 쏟아졌는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조사도 받지 않았다.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12월15일 재판에서는 이 의원과 임 전 차장 변호인의 문답이 평행선을 달렸다.
“1차 진상조사위 조사보고서에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추단케 하는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돼 있습니다.”(변호인)
“사법부 블랙리스트라 제가 말한 적 없고, 뒷조사 파일이라 한 것입니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용어 정의도 자체적으로 내린 것으로 압니다.”(이 의원)
“추가조사위원회 보고서입니다.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한 의혹의 해소’가 활동 목적인데요, 이 보고서도 블랙리스트 언급 없이 판사 동향 수집한 문건이 발견됐다고 발표했고요.”(변호인)
“뒷조사 파일을 블랙리스트라고 칭한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뒷조사 파일이 발견됐다지만, 이상하게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문장이 섞여 있었습니다. 용어 정의가 계속해서 바뀌면서 결론이 달라졌습니다.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무엇인지 그 자체가 모호했습니다.”(이 의원)
“2018년 5월25일 3차 조사보고서에 ‘비판적 법관 리스트를 작성해 그들에게 조직적, 체계적 인사상 불이익을 부과했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돼 있습니다.”(변호인)
“판사 동향 분석 파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잖아요. 의혹이 제기됐고 확인됐다고 끝나야 하는데, 왜 뒤에 더 붙었는지 의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이 의원)
이 의원은 판사 뒷조사 파일 작성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한 반면, 임 전 차장 변호인은 ‘판사 블랙리스트’라는 건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며 궤가 다른 주장을 한 셈이다.
이 의원은 세차례에 걸친 법원의 진상조사 결과에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증인신문 말미에 윤종섭 재판장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을 때다. 이 의원은 다소 목이 멘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증언하면서 드는 생각은 2017년 3월 법원에서 1차 조사할 때 피고인을 포함해서 같이 조사받았던 다른 판사들께서 사실대로만 이야기해줬으면, 그때 어려웠다면 2차 조사할 때, 아니면 3차 조사할 때만이라도 있는 그대로 얘기만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흠… 그런 생각이 듭니다.”
2017년 2월로부터 4년 가까이 지났고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금의 이 의원은 2017년 2월의 그가 아니다. 변호사를 거쳐 국회의원이 됐다. 사법농단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증언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소회를 남겼다.
“밖에서 법원을 바라볼 때 ‘뭐가 변했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많은 사건을 겪고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4년을 보냈는데 ‘물을 가르고 온 것 아닌가’ 생각에 힘들 때가 있습니다. 법원이 변한다는 것은…, 법원은 판사들의 것이 아니거든요. 피고인이 2017년 사석에서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은 ‘법원은 판사들의 것이다’라는 것이었어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법원은 국민들의 것이고요, 판사들은 법원을 빌려 쓰는 거죠. 직업윤리를 다시 세우려고 한다면 국민들 입장에서 바라볼 때 요구되는 판사들의 윤리 수준이 뭔지 그에 맞춰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