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스테인, <의사의 왕진>, 1658~1662년, 패널에 유채, 영국 런던 앱슬리 하우스
중학생 때 동네 슈퍼마켓에서 생리대를 샀던 날을 기억한다. 계산대의 아주머니는 말없이 생리대를 신문지에 둘둘 말고 그것도 모자라 검은 봉지에 재빨리 넣어 건네주셨다. 그 모든 과정이 어찌나 신속하고도 은밀했던지, 나도 함께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비밀 요원이 된 느낌이었다. ‘내가 생리대를 샀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면 안 돼. 얼른 집에 가서 서랍 깊숙이 숨겨야지.’
그랬다. 생리대는 부끄러운 물건이었다. 남들 눈에 띄면 절대 안 되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출혈도 혹시나 남들이 알까 봐 노심초사하는 부끄러운 일이 되었다. 월경(月經)을 월경이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드러내놓고 말하기엔 뭔가 찜찜하다는 이유로, 생리 현상 중 하나니까 ‘생리’라고 돌려 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에둘러 쓴 ‘생리’마저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해서 ‘홍양’, ‘대자연’, ‘그날’ 등으로 대체하곤 한다. 주기를 한달로 보고 월경을 일주일 동안 한다고 가정하면, 항상 가임기 여자 넷 중 한명은 월경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여성에게는 일상인데, 왜 월경은 대놓고 얘기도 못 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금기시됐을까. 이 ‘월경 혐오’는 사실 유래가 깊다.
12세기 이탈리아의 법학자 파우카팔레아는 이렇게 말했다. “월경하는 여자의 접촉으로 인해 과일이 열리지 않고, 새 포도주는 말라버리고, 풀들은 죽고, 나무는 과실을 잃고, 녹이 철을 망치고, 공기는 어두워진다. 만약 개가 월경 피를 먹게 되면 광견병에 걸린다.” 이뿐 아니라 중세인들은 한센병에 걸리는 이유들 중 하나가 월경 중인 여성과 성관계를 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이쯤 되면 월경하는 여자 자체가 독 덩어리라는 이야기인데,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월경 때 여자의 몸은 자궁이 관장하는데, 플라톤에 따르면 자궁은 “짐승 안의 짐승”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기원전 367년께 저작 <티마이오스>에 이렇게 적었다. “여성이 오랫동안 성생활을 못 한다면, 자궁이 스스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골반 안쪽에서 탈출해 다른 장기에 손상을 입힐 것이다.” 자궁에 발이라도 달렸단 말인가? 놀랍게도 옛 서양인들은 자궁이 자체의 욕망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의사의 아버지’라 하는 히포크라테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돌아다니는 자궁’(wandering womb)이라고 했는데 “자궁이 배 윗부분에 떠다닐 경우 거친 숨과 심장의 날카로운 통증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궁이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카파도키아의 의사 아레테우스는 “강하게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과 실어증, 나아가 매우 급작스러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자궁은 마치 걸신들린 아귀처럼 배를 채우길 원하기 때문에 규칙적으로 임신하지 않으면 여성들은 온갖 종류의 병에 걸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네덜란드 화가 얀 스테인(1626~1679)이 그린 <의사의 왕진>에도 채워지지 않은 자궁 때문에 고통받는 여성이 등장한다. 한 젊은 여성이 이마에 손을 댄 채 의자에 앉아 있다. 의사는 이 여성을 진찰하기 위해 방문한 상황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여성의 상태는 걱정할 만한 것 같지 않다. 의사의 표정도 여유롭고, 여성의 혈색이나 옷차림도 환자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다. 그렇다면 여자는 도대체 무슨 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바닥에 앉아 빙긋이 웃고 있는 남자아이가 단서다. 남자아이는 마치 사랑의 신 큐피드처럼 화살을 갖고 놀고 있다. 이는 큐피드가 쏜 화살을 맞고 여성이 사랑에 빠진 것을 암시한다. 마침 벽에는 에로틱한 그림이 걸려 있다. 그녀는 ‘상사병’에 걸린 것이다. 하지만 당시 수많은 그림에서 상사병에 걸린 여성은 육체적 질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표현됐는데 그렇게 그려진 이유가 있었다. 바로 탐욕스러운 자궁 때문에! 의사는 아마도 그녀가 사춘기 이후 너무 오랫동안 자궁을 방치해놓았으며(즉 남성과 성관계를 하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괴로워하던 자궁이 몸속을 돌아다니다가 호흡을 막아 여성에게 고통을 줬을 거라고 진단했을 것이다. 여성의 발치에는 향을 피운 단지가 있다. 당시 사람들은 자궁 가까이에 향기로운 냄새를 피우면, 몸속에서 방황하던 자궁을 원래의 자리로 유인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의사는 ‘향기 요법’을 처방했을 것이다. 이처럼 자궁은 욕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신체적 고통까지 주는 위험천만한 장기였다.
자궁의 해악(?)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자궁은 여성의 정신에도 악영향을 끼쳐서, ‘히스테리’도 자궁 때문에 발생하는 대표적 증상으로 여겨졌다. 오늘날 히스테리는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지만, 원래는 ‘자궁을 원인으로 하는 질환’ 일반을 가리켰다. 히스테리라는 말 자체가 자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히스테라’(hystera)에서 왔을 정도다. 그렇다면 자궁은 어떻게 여성들에게서 이성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일까. 네덜란드 판화가 헨드릭 혼디위스(1573~1650)의 동판화 <몰렌베이크의 무도병 여자들>을 보자.
헨드릭 혼디위스, <몰렌베이크의 무도병 여자들>, 1642년, 동판화, 영국 런던 웰컴컬렉션.
<몰렌베이크의 무도병 여자들>은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르 브뤼헐(1525~1569)이 1564년에 그린 소묘를 토대로, 헨드릭 혼디위스가 동판화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몰렌베이크는 벨기에 브뤼셀 근처 마을로, 1564년 당시 ‘무도병’이 창궐하고 있었다. 무도병은 몇몇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까지 대열에 끼어들어 집단적으로 광란의 춤을 추는 현상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춤꾼들은 흥분 상태에서 춤을 추다 탈진해 쓰러지거나 심장마비가 올 때에야 비로소 춤을 멈출 수 있었다. 현재는 이 무도병이 상한 농산물에서 나오는 환각제 성분 때문에 생겨났다고 분석하는 학자도 있고, 흉년과 기근, 흑사병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극심한 공포로 빚어진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16세기에는 달랐다. 당시 사람들은 여자들의 자궁에서 나오는 ‘시큼한 증기’ 때문에 무도병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브뤼헐은 무도병을 앓는 세 여성에게 남자들이 떼로 달라붙어 강가로 끌고 가는 현장을 포착했다. 여성들의 배는 둥글게 부풀어 있는데, 이성을 잃게 만드는 증기가 자궁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통제 불가능한 여자들을 차가운 강물에 처넣어야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다리 위에는 이미 한 여성이 두 남자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 서 있다. 그녀는 곧 무방비 상태에서 물속으로 떨어질 것이다. 다리 왼쪽에는 한 여성이 넋이 나간 채 앉아 있다. 그녀는 아마 ‘찬물 치료’를 받고 정신을 차리는 중일 것이다.
그녀들이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했는지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16세기 프랑스의 의사이자 인문학자 프랑수아 라블레가 쓴 글을 보는 게 이해가 빠를 것이다. “여자의 몸속 은밀한 곳에, 남자에게는 없는 어떤 짐승 혹은 물건이 있다. 거기서는 찝찔하고, 게걸스럽고, 맵고, 쿡쿡 쑤시고, 지독하게 간지러운 질산성의 체액이 분비된다. 체액은 아플 정도로 따끔거리며 흘러나오는데, 여자라는 물건은 지극히 날카롭고 예민해서 이때 몸 전체가 벌벌 떨리고 황홀해지고 욕망이란 욕망은 남김 없이 충족되어 혼미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조물주가 저들의 이마에 부끄러움을 살짝 칠해놓지 않았다면, 저들은 미친 여자들처럼 거리를 쏘다닐 것이다.” 즉 자궁이 몸 안에 있기 때문에 이 여성들은 강물에 빠져야 했던 것이다.
이제는 자궁이 온몸을 돌아다니며 여성들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궁 혐오’의 분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임신을 원하는 자궁이 병을 일으킨다’는 17세기의 진단은, ‘결혼하면 생리통은 자연스럽게 낫는다’는 21세기의 충고와 묘하게 겹친다. ‘자궁이 내뿜는 시큼한 증기 때문에 히스테리가 발생한다’는 말을 들을 땐 어이없다며 웃을 사람도, 생리전증후군 때문에 여성들이 도벽 증상에 시달린다는 이야기에는 아마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자궁 혐오는 ‘호르몬’이라는 과학 용어로 포장되어 여전히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몰아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호르몬의 변화가 몸과 기분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는 아니다. 남성들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남성들의 컨디션 변화를 호르몬과 연결 지어 설명하는 경우는 없다. 이와 관련해 심리학자 로빈 스타인 델루카는 책 <호르몬의 거짓말>에서 중요한 사실을 짚었다. “대부분의 과학 연구에서 이미 호르몬 신화의 무용론이 증명된 지 오래되었으며, 1990년 초부터 많은 학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왜 묻히고 여전히 ‘호르몬 신화’가 건재할까. “제약회사와 의료업계가 ‘호르몬 치료’를 돈벌이로 활용해왔기에, 또 호르몬 신화가 가부장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왔기에 이 사실을 은폐·왜곡했다”는 것이 델루카의 설명이다.
실제로 예로부터 가부장 사회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자궁을 몸 안에 들여놓고 지배당하는 여성에게 감히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성은 이성적 존재이기보다는 살덩이, 즉 자연에 가까운 존재였다. 한달에 한번 몸 안에서 피를 내보내는 모습은 그 유력한 증거였다. 반대로 자궁이 없는 남성은 문명에 가까운 존재였다. 이는 문명이 자연을 관리하듯, 남성들은 열등한 여성의 몸을 통제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이어졌다.
안타까운 것은 현대 여성들마저도 이런 가부장적 인식이 뿌리내리는 데에 본의 아니게 일조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여성들은 자신의 분노와 걱정, 짜증을 생리전증후군 탓으로 돌려버리는 일이 적지 않다. 자연의 인과법칙에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호르몬 때문에 예민했다’는 변명은 쉽게 면죄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쉬운 선택’일지는 몰라도 과연 ‘좋은 선택’일까. 델루카는 “당장 상황 모면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는 ‘월경하는 여성은 신경질적이다’라는 편견을 본의 아니게 강화하는 역할을 하며, 결국 한달에 한번 ‘괴물’이 되는 여성보다 남성이 우월하다는 명제를 인정하는 꼴이 되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다 보면 영원히 “오늘따라 왜 그래? 혹시 그날이야?”라는 남성들의 질문을 막지 못할 것이다. 자궁의 수난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언제쯤 여성의 신체 자체가 차별의 근거로 쓰이는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 이유리 작가.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등 예술 분야의 책을 썼고,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한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을 묶어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을 냈다. 이번엔 그림을 매개로 인간 사회에 작동하는 다양한 층위의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여기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3주에 한번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