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오랫동안 딸을 만나지 못했다. 이혼한 뒤 아이와 떨어져 살던 중,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영향으로 대면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오후 4시께, 아버지는 딸을 만나기 위해 화상회의 프로그램에 접속했다. 법원의 화상면접교섭 지원서비스를 통해서다. 하지만 초등학생 딸은 “아빠한테 얼굴을 보여주기 싫어요”라며 화면을 이내 꺼버렸다. “아빠, 엄마 사이에서 눈치 보여서 아빠 만나기 싫어요. 그런데 아빠는 내가 왜 보고 싶대요?” 꺼진 화면 속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랑이(가명) 얼굴 보면서 아빠가 사과하고 싶어.” 아버지의 설득에 딸은 잠시 뒤 화면을 다시 켰다. 그리고는 이따금 대화를 이어갔다. “학교 그림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며? 사랑이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궁금하다.” 아빠의 말에 함께 있던 상담 전문가 위원도 말을 보탰다. “선생님도 사랑이 그림 보고 싶어.” 그 말에 아이는 화면에 자신이 그린 독수리 그림을 흔들어 보였다. 20여분 동안의 대화를 마친 뒤 “다음 주에 또 볼까”라는 아버지의 물음에 아이는 “엄마한테 물어볼게요”라며 화상 면접교섭을 끝냈다.
이날 서울가정법원에서는 비대면 화상 면접교섭 서비스를 시범 도입하기 위한 모의 시연이 열렸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시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고 이혼가정 부모와 자녀의 면접교섭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다.
‘코로나19 시대’에 법원에서도 영상이나 화상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법원의 모든 재판부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영상 법정을 만들었다. 증인·감정인 등이 법정에 직접 나오지 않고도 화상회의 장비를 통해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도 법원에서는 영상·화상을 재판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앞서 대구지법 안동지원 형사부(재판장 박찬석)는 2019년 10월 성범죄 사건 형사재판에서 서울에 사는 고등학교 1학년 피해자가 피고인과 전혀 대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증언할 수 있게 원격 증인신문을 처음 시행하기도 했다. 피해자 부모가 생업 등의 사정으로 함께 안동지원까지 오기 어려웠고, 피해자도 심리적인 불안 등으로 집 근처에서 증인신문을 받길 원하자 안동지원 법정과 서울 소재 법원 법정을 연결한 영상 증인신문을 처음 시도한 것이다.
국외에선 이동식 중계 차량을 활용한 제도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캔자스주 아동지원센터의 이동식 증언 중계장치 서비스는 이동식 중계 차량이 산간지역 등에 사는 증인을 찾아가 증언을 법원에 생중계한다. 증인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거나, 신체적 문제 등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경우, 이동식 중계 차량을 활용해 법정에 직접 출석하지 않고도 진술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한 것이다.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처한 특수성을 고려해 영상재판을 폭넓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두순 사건’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84단독 이수진 판사는 2011년 2월 ‘조두순 사건’ 피해 아동 가족이 낸 국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검사들은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대한 최선의 조사환경 조성, 필요 최소한의 조사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조사 당시 심신 상태, 조사 횟수·방법 등을 참작해 총 1300만원을 지급하라”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사건 발생 당시 8살이던 피해 아동은 성폭력으로 중상해를 입고 병원에 입원 중이었는데도 2009년 1월 추운 겨울 검찰에 불려가 2시간에 걸쳐 4차례나 피해 사실 진술을 되풀이해야 했다. 검찰이 영상녹화기기 조작 미숙 등으로 여러 차례 진술을 받은 것이다. 피해 아동 가족은 조사 전날에도 검찰 소환요구를 받고 병원 외출허가 절차가 늦어져 저녁 6시에야 병원을 나섰다가 택시가 없어 추위에 떨다가 출석을 포기하고 되돌아왔다. 서울고법 민사5부(재판장 최종한)도 같은 해 10월 양쪽 항소를 기각해 판결이 확정됐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코로나19 확산 우려 등으로 영상재판이 확대됐지만,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막는 방지책 차원에서도 영상재판의 가능성을 보다 넓게 볼 필요가 있다”며 “증인의 건강상태나 심리적인 부담 등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 비디오 등 중계장치를 이용한 재판을 확대한다면 실체적 진실 발견과 피해자 보호를 조화롭게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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