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 출석한 윤성여씨가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 여덟번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죄가 없는 윤성여(54)씨를 잡아들여 범인으로 재판에 넘겼던 경찰관들의 특진을 취소했다.
경찰청은 지난 3월 말께 열린 심사위원회에서 1989년 윤씨를 검거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 순경에서 경장으로 승진했던 3명과 경장에서 경사로 승진했던 2명 등 5명의 특진을 취소했다고 13일 밝혔다.
지난해 12월17일 윤씨가 재심을 통해 최종 무죄 판결을 받고 32년 만에 누명을 벗은 뒤, 경찰은 윤씨를 체포한 공로를 인정받아 특진했던 경찰관의 처분에 대해 검토해왔다. 경찰청은 당시 수사에 참여한 경찰관들의 가혹행위가 재심 과정에서 드러났고 특진을 취소할 사유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연금회수나 임금반납 등의 실제적인 불이익을 주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잘못된 수사를 이유로 특진을 취소한 사례가 없어 법률 전문가 등의 의견을 구했는데 임금과 연금은 이들이 승진 이후 노동을 했던 대가로 준 것이기 때문에 특진 취소를 이유로 회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인사 기록에 특진 취소 사유를 남겨 경찰이 과거를 반성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경찰관들이 퇴직한 지 10년 이상 지났고, 2명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당사자인 윤씨는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씨는 이날 <한겨레>에 “경찰 쪽에서 내 의견을 묻는 연락이 왔었고 ‘이들이 받았던 국민세금을 꼭 돌려받아달라’는 뜻을 전달했었는데 아쉽다”며 “잘못 지급된 국민 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특진만을 취소하는 것은 하나마나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수사 경찰들의 임금과 연금을 회수할 수 있는 법적절차를 밟을지 고민하고 변호사와 상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윤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아무개(당시 13살)양이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채로 발견되며 시작됐다. 이듬해 범인으로 지목된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하면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2심과 3심 재판부는 모두 기각했다. 결국 윤씨는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됐고, 지난해 말에야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었다.
재심 과정에서 당시 경찰의 불법체포 및 감금, 폭행·가혹행위가 확인됐고, 윤씨의 유죄 증거로 쓰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서가 조작된 사실도 밝혀졌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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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그날 화성, 누가 왜 국과수 감정서를 조작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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