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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전·현직 여군들 “군 성폭력, 스스로 해결 못한다”

등록 2021-06-10 03:59

장교·부사관 등 6명 인터뷰
“공군 중사 같은 사건 무수히 많아”
“높은분 옆, 어린 여군 차출해 앉혀”

39명 긴급설문…64% “성폭력 경험”
“군 성범죄 사건은 외부에서 맡아야”
7일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이아무개 중사의 분향소. 연합뉴스
7일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이아무개 중사의 분향소. 연합뉴스
“솔직히 말할까요? 성폭력으로 목숨을 끊는 여군들은 주기적으로 있었습니다. 새삼스럽게 왜 이번만 이슈가 되는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전직 육군 장교 ㄱ씨에게 이아무개 공군 중사 사건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ㄱ씨만이 아니다. <한겨레>가 만난 6명의 전·현직 여성 군인들은 이 사건에서 드러난 조직적 회유와 부실 수사, 2차 가해와 고립의 과정이 너무 익숙하다고 답했다. 이들은 이번에는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이던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 “업무에선 열외, 높은 분 식사 땐 꽃처럼 취급” 성폭력은 낮은 성인지 감수성에서 싹튼다. 집단 내 소수(2020년 기준 전체 7.4%)인 여군은 성인지 감수성이 높지 않은 군 내부에서 옴짝달싹 못 한다. ㄱ씨는 “처음부터 여군을 조심스러워하면서 업무나 회식에서 제외해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았다”며 “그러다 보면 열외되기 싫어 적극 나서기도 한다. 그러면 ‘얘는 이런 걸 좋아하나 보네? 이래도 괜찮은가 보네?’라며 바로 선을 넘어버리는 행동과 말이 시작된다”고 했다.

전직 장교 ㄴ씨는 군의 여군에 대한 인식을 ‘꽃’, ‘데커레이션’(장식)이라고 표현했다. ㄴ씨는 “부대에 ‘높으신 분’들이 방문해 식사하면 어린 여군들이 차출된다. ‘넌 ○○○ 옆에 앉아라’ 식이다”라며 “그런 걸 보면서 진급하고 싶은 남군들은 ‘높은 분들이랑 식사해서 부럽다’고 한다”며 씁쓸해했다.

■ 신고 순간 ‘관심병사’ 낙인과 ‘신상 공유’ 성폭력 신고를 꺼리는 이유는 많다. 그중에서도 ‘관심병사’라며 따라오는 낙인이 가장 큰 장벽이다. ㄱ씨는 “성폭력 사고가 한번 나면 단체 메신저 방에 이름과 사진 등 신상이 돌고, 나도 몇번 본 적이 있다”며 “인사 기록에 남지 않더라도 알 사람들은 다 누가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 ㄴ씨는 성폭력 피해로 선임이 전역한 뒤 수사관이 자신에게 한 말을 떠올렸다. 그는 “수사관이 나한테 와서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너는 그럴 일 없게 하라’고까지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내가 피해를 봐도 신고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성폭력 예방 교육과 제도가 내실 있게 운영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ㄴ씨는 “성평등 교육은 꼬박꼬박 한다. 그런데 검증되지 않은 강사가 강연 집중도를 높이려고 성폭력 상황을 희화화하는 말을 하고, 그걸 듣고 남군들은 깔깔 웃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전직 장교 ㄷ씨는, 남군이 공문 작성법을 알려준다며 뒤에서 포개듯이 안았다는 후배 군인의 피해 호소에 성고충전문상담관이 ‘그 정도는 괜찮지 않냐’고 반응했다고 전했다.

매뉴얼과 제도가 있어도 상급자들 인식에 따라 회유와 은폐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현역 부사관 ㄹ씨는 “지휘관이 관심 있게 사건을 보느냐에 따라 고충 처리 방식과 속도가 달라진다”고 했다. 전직 장교 ㅁ씨는 “여군이 배치되는 순간 지휘 부담이 높아진다며 짐으로 취급하는 지휘관도 있으니 성폭력이 발생해도 여군이 군에 폐를 끼치는 존재라고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역 장교 ㅂ씨는 “이 중사 상관의 경우 피해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부대는 불명예를 입게 된다는 개인적 욕심이 더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여군들 더 고립될까 걱정” 여군들은 매뉴얼과 제도는 이미 충분하며 이제는 군 스스로 변하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입을 모았다. ㄷ씨는 “내부에서 성 관련 사건을 처리하는 시대는 이제 끝난 것 같다. 학연, 지연, 혈연 없는 외부에서 다루는 게 더 깨끗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사건으로 여군이 더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ㄴ씨는 “이 중사 사건과 관련해 ‘재수가 없었다’, ‘별것도 아닌데 저 부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안 그래도 차별받는 여군들이 더 고립될까 걱정된다”며 “부디 여군들이 서로의 용기가 될 수 있었으면, 가해자는 처벌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셋 중 둘 “성폭력 피해 경험” 이들이 말하는 만연한 성폭력과 사건 은폐는 설문조사에서도 재확인된다. <한겨레>가 8~9일 전·현직 공군 여성 부사관 39명을 상대로 한 긴급 설문에서 25명(64.1%)이 ‘다른 군인으로부터 성범죄(성희롱·성추행·성폭행 등) 피해를 직접 당한 경험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있다”고 답했다. ‘동료나 부하들의 성범죄 피해를 직접 목격했거나 피해자로부터 직접 피해 사실을 들은 적이 있는지’에는 87.2%(34명)가 “있다”고 했다.

성범죄가 이어지는 이유를 두고서는 ‘처벌이 약해서’라는 응답이 46.2%(18명)로 가장 많았다. ‘상명하복의 수직적 군대문화’(30.8%, 12명)가 두번째로 많은 답이었다. 한 응답자는 “여성이 소수이고 높은 계급을 가진 대부분이 남성이다. 다수 의견이 우선되는 분위기가 있고, 개인보다 집단의 명예와 이익을 더 중시하는 구시대적 문화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다른 응답자도 “이미 그들(가해자들)은 우리(여군)가 자신보다 아래라는 생각을 깔고 가기 때문이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 같다”고 했다.

‘군 내부기관에 도움 요청하겠다’ 0명 설문조사에서도 군의 내부적 해결에 대한 기대는 바닥으로 나타났다.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기 적절한 대상으로는 53.9%가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를 택했다. 군 내부 기구인 ‘감찰·기무·헌병대(군사경찰)’를 택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한 응답자는 “군대에만 있는 특수한 범죄 외에 다른 범죄는 군사법원이 아닌 외부에서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대 재판에서는 검찰과 변호사, 판사 모두가 군인이므로 지휘관의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현직 공군 부사관들이 주변 시선과 인사 불이익 가능성 등을 신고를 꺼리는 이유로 꼽은 것도 군 자체의 해결 능력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다. 한 응답자는 “2차 가해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신고 뒤처리) 과정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그 과정이 너무 길고 힘들어서 또다시 같은 상황이 생겼을 때 신고하기가 머뭇거려질 것 같다”고 했다.

이우연 장예지 장필수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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