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94)가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쓴 편지를 들고 있다. 배경은 역사관 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사진을 전시한 공간이다. 박고은 기자
“너도 봄을 알고 찾아왔구나. 내 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는데….”
11일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한겨레>와 만난 ‘위안부’ 피해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94)는 역사관 뒤뜰에 핀 라일락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1944년 봄, 16살이던 이 할머니는 대만에 끌려가 3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 ‘그 일’을 묻어두다, 1992년에야 피해를 증언했다. 2007년 2월에는 미국 하원 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고 김군자 할머니와 함께 일본의 만행을 증언하기도 했다.
2022년 봄, 94살이 된 그는 여전히 ‘위안부’ 문제 해결과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 위해 싸우고 있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12명뿐이다. 이 할머니는 “더는 쓸쓸한 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며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쓴 편지를 <한겨레>에 공개했다. 편지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당부와 여성가족부 폐지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저 이용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대통령 당선인님!… 꼭 약속을 지켜주세요.”
이 할머니는 꾹 눌러 편지를 썼다. 이 할머니는 지난해 9월11일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경선 후보였던 윤 당선자를 만났다. 이 할머니는 “윤 당선자가 ‘대통령이 안 되더라도 ‘위안부’ 문제는 해결하겠다. 일본의 사과를 반드시 끌어내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 모른다. 대통령이 되셨으니 약속을 지킬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윤 당선자의 공약인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 할머니는 “여가부는 있어야 합니다. 생존한 할머니 열두 분이 지난 세월 설움 당한 것을 너무나 잘 챙겨주었습니다”라고 편지에 썼다. 지난 2월 이 할머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만나 “여성가족부가 없었으면 우리는 죽었다”며 여가부 폐지 공약 철회를 요청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윤 후보가 결정한 사안”이라면서 폐지 입장을 고수했다. 이 할머니는 <한겨레>에 “여가부는 친정 같은 곳”이라며 “할머니들이 의지할 곳은 (부처 중) 여가부밖에 없다. 직원들뿐 아니라 장관도 꾸준히 연락이 온다. 할머니들을 잊지 않고 신경 써준다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이외에도 여가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위안부 피해자법) 제4조에 따라 △생활안정지원금 △간병비 △장제비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생계급여 △의료급여법에 따른 의료급여 등의 지원을 하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94)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쓴 편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하지 못한 지난 정부들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28일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 파기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꾸려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합의 당시 우리 정부가 ‘위안부’ 관련 단체들을 설득하고, 해외 소녀상 건립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약속 등을 담은 ‘이면합의’가 존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뒤 줄곧 ‘위안부’ 합의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재협상에 나서진 않았다. 문 대통령은 2017년 티에프 발표 뒤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놓았다. 그러나 지난해 1월28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해당 합의를 ‘국가 간 공식합의’로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한국 법원이 같은 달 8일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의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하며 한·일 갈등이 고조되면서다. 이 할머니는 현 정부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그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가 있느냐. 현 정부에서는 해결할 줄 알았는데 (지난 정부와) 똑같다. 지금이라도 해명했으면 한다”고 비판했다.
윤 당선자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놓은 바 없다. 지난 1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네트워크’가 6개 정당 대선 후보들에게 한·일 ‘위안부’ 합의에 관한 정책질의서를 전달했지만 윤 당선자는 답변을 거부했다.
이 할머니는 새 정부에 자신의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무효화하고,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이끌어내 달라”는 게 이 할머니의 부탁이다. 그는 “새 대통령은 다를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약속 잊지 말고 꼭 지켜주세요. 먼저 떠나간 할머니들한테 ‘새 대통령님이 해결해주셨다’는 말을 전하는 게 내 마지막 소원입니다”라고 전했다.
다음은 이용수 할머니가 윤석열 당선자에게 보내는 편지 전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님!
대통령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 이용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대통령 당선인님!
지난 9월에 역사관에 방문하셔서 두 손을 잡고 해결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꼭 약속을 지켜주세요.
그리고 여성가족부는 있어야 합니다. 생존한 할머니 12분이 지난 세월 설움 당한 것을 너무나 잘 챙겨주었습니다.
또한 위안부 문제는 세계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대한민국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야 합니다.
저 이용수는 대한민국 딸로서 꼭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한일과 교류해서 올바른 역사 공부하면 세계 평화 옵니다.
2022년 4월11일 10시55분
이용수 씀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