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내각 후보자들을 발표를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할당과 안배는 하지 않겠다. 대한민국 인재가 어느 한쪽에 쏠려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지역이나 남녀 등 균형있게 잡힐 거라고 믿고 있다.”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장관 후보자들을 1차 지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현재까지의 1기 내각 장관후보자들을 보면 ‘서울대 출신의 60대 영남권 인사’라는 주류상이 선명하다. 반면 여성 장관 후보자는 3명에 그쳤다. 윤 당선자는 지난달 현 정부의 여성 장관 할당 방침을 폐기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국민의힘도 대변인 선발·지방선거 공천 등에서 여성 안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기류다. 정치 영역에서의 여성 대표성이 현저히 낮은 상황에서 새 정부·여당이 노골화하는 ‘기계적 균형론’에 전문가들 비판이 이어진다.
현행 공직선거법(47조)은 각 정당이 지역구 지방의원 후보자 추천시 여성 1명 이상의 추천, 비례대표 경우 50% 여성 할당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외 입법화된 ‘여성 할당제’는 사실상 없다. 대부분 남성 주류 정당 및 정치인의 ‘의지’에 여성의 참여 수준이 맡겨져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은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고려해온 여성 할당·안배를 백지화하는 모양새다. 지난 2일 토론배틀로 진행한 2기 국민의힘 대변인단 선발에서는 총 8명이 추려졌는데 전원 20∼30대 남성이다. 6·1 지방선거에서도 “당 차원의 할당제는 사용하지 않겠다”(3월24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고 밝혔다. 오직 ‘능력주의’에 따른 인사 원칙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남성 중심의 정치 환경에서 여성 안배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외려 불공정을 방치·증폭시키는 행태라고 지적한다. 김은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겨레>에 “공정을 능력주의와 등치시키는 건 위험하다”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출발선만 동일하게 만드는 건 공정이 아닌, 자기편의주의적 공정일 뿐”이라고 했다. 남성 주류 정치 환경에서는 공천 등 정치적 기회를 얻는 지점서부터 ‘구조적 성차별’이 작동한다는 취지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권수현 대표도 <한겨레>에 “남성이 기준이 되는 정치 환경이 오히려 능력주의를 해치고 있다. 여성 할당은 이런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여서, 능력주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할당제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자 총 71명 가운데 여성 후보는 6명(8.45%)에 불과했으며, 17개 광역시·도 모두 당선자는 남성이었다. 기초자치단체장 후보의 경우에도 총 749명 중 여성 후보는 35명(4.67%)에 불과했다. 당선자는 226명 가운데 9명(3.98%)이었다. 자치단체장 선거 과정에 적용되는 ‘할당제’는 없기 때문이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과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국회의원이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여성 주권자가 외친다 “여성 할당제가 정치 개혁의 시작이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제공
되레 ‘제도화’된 할당제를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성 정치의 ‘의지’만으론 여성의 과소대표 문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13일 ‘여성 주권자가 외친다 “여성 할당제가 정치 개혁의 시작이다”’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 정개특위를 즉각 가동해 지역구 여성할당제 의무화 법안을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주최 쪽은 “시민의 절반이 여성임에도 절반은커녕 반의 반도 대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더이상 여성 정치인들의 의견이 일부 소수 의견으로 치부되지 않고, 성평등을 말하는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의사결정 지위에 여성의 자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새 정부의 첫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지명된 김현숙 장관 후보자도 19대 국회에서 ‘지역구 선거 여성 30% 공천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김은경 연구위원은 “대의 민주주의에서 국회의원 등 정치인은 유권자의 대리인이고, 여성의 이해를 대변하는 역할을 여성 정치인이 하고 있다”며 “할당제는 성평등 정치를 위해 여성들이 떳떳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일정 몫을 보장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유권자들도 성평등 정치를 필요로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기초자치단체장의 여성 과소대표 개선과 젠더 공정성 연구’에 따르면, 남녀 유권자 절반 이상(53.8%)이 여성이 과소대표되고 있는 상황이 불공정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그해 앞선 7월 여성 기초자치단체장 지역의 유권자 400명, 남성 기초자치단체장 지역 유권자 600명(남성 492명, 여성 5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다. 기초자치단체장 성별 불균형의 문제점으로는 △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아 문제해결이 어려워서(22.7%) △성별의 입장 차이로 이해 및 문제해결에 어려움이 있어서(12.3%) △여성관련 정책에 소홀해서(12.3%) 등이 꼽혔다. 보고서는 “남성 중심의 기초자치단체가 형성될 경우 성평등 실현에 대한 두려움, 남성 중심의 정책 수립, 여성정책 및 육아정책의 상대적 낮은 관심도에 대한 염려를 지닌 것”으로 분석했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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