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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뉴스AS] 여성후보 추천보조금은 어쩌다 ‘거대정당 보너스’가 됐나

등록 2022-04-19 15:35수정 2022-04-19 16:01

2008년 이후 총선 여성추천보조금 내역 보니
76% 거대양당에 돌아가 제도 한계 뚜렷
최근 법개정에 군소정당 배제·양당독식 더 용이
전문가 “여성후보 비율 제고 위해 ‘페널티’ 필요”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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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2주 정도 앞두고 ‘여성추천보조금’이 때아닌 주목을 받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총선의 선거보조금으로 12개 정당에 440억7000여만원을 지급했다고 밝혔는데, 이 가운데 여성추천보조금 8억4200여만원이 국가혁명배당금당(배당금당)에 돌아갔기 때문이다. 당시 여성추천보조금을 받은 정당은 허경영 대표의 배당금당 뿐이었다. 전국 지역구 총수(253개)의 30%(76명)를 넘는 77명의 여성후보를 추천한 배당금당 외에 여성후보 비율이 30%를 넘는 정당은 없었다. 허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보조금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둘러댔지만 ‘30% 기준’을 가까스로 넘겨 타낸 8억여원을 두고 ‘제도 악용 사례’라는 비판이 나왔다.

국회는 법 개정에 나섰고, 지난 15일 정치자금법 일부개정법률안(정치개혁특별위원장 대안)이 의원 195명 찬성(4명 기권)으로 통과됐다. 그런데 되레 “거대양당이 여성후보 공천 의지가 없으면서도 보조금을 챙겨가겠다는 심보를 드러낸 개악”(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이라는 비판이 정치권 안팎서 제기되었다. 당초 제도의 취지인 여성후보 공천 제고 장치는 외면한 채, 거대정당이 보조금 나눠 먹기 좋은 구조만 그대로 유지됐다는 것이다.

여성후보 비율 같아도 보조금은 거대정당이 더 많아

‘여성추천보조금’은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시도의회의원 선거 등에서 여성후보자를 일정 비율 추천하는 정당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개정 전 정치자금법(26조)은 여성후보가 ‘전국 지역구 총수’의 30%를 넘기는 정당에 여성추천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30%를 넘는 정당이 없을 경우, 5% 이상 여성후보를 추천한 정당에 차등을 둬 보조금을 준다. 이미 차등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정치자금법은 여성추천보조금 총액의 40%를 정당의 국회 의석수에 따라, 다른 40%는 직전 총선에서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분배하도록 했다. 나머지 20%만 각 정당의 지역구 여성후보자 수의 비율을 따랐다. 같은 비율의 여성후보를 공천하더라도 거대정당이 보조금을 대부분 나눠 갖는 구조다. ‘전국 지역구 총수의 30%’를 기준으로 해, 후보가 많지 않은 군소정당엔 절대 불리하다.

20대 총선 선거보조금 등 지급내역.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대 총선에서 민중연합당은 더불어민주당과 똑같은 25명의 후보(지역구 총수의 9.88%)를 공천하고도, 민주당은 5억여원의 여성추천보조금을 받았지만 민중당은 9100여만원의 보조금만 받을 수 있었다. 민주당이나 민중당보다 적은 16명의 여성후보를 추천한 새누리당은 19대 총선에서 의석수와 득표율이 높았다는 이유로 6억여원의 여성추천보조금을 받아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가족 관련 법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연구(2020) 갈무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여성추천보조금’은 이미 정당보조금을 독식하는 기성정당이 10%대의 여성후보만 추천하고도 받을 수 있는 ‘거대정당 보너스’ 역할을 했다. 공직선거법상(47조 4항) 지역구 후보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권고’의 보완책으로 고안된 취지가 전혀 기능하지 못하는 셈이다.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제도 첫해인 2008년 이후 4차례 총선의 여성추천보조금 지급내역을 살펴본 결과, 전체 보조금의 8할 가까이(76%, 105억7317만여원)가 양대 정당에 지급됐다. 배당금당이 빈틈을 노려 8억여원을 독식한 지난 20대 총선의 사례를 제외하면, 양대 정당의 몫은 81%까지 오른다. 양당보다 여성후보 공천에 적극적이었고, 정당보조금도 적은 나머지 정당들이 가져가는 돈은 10% 안팎에 머물렀다. 네 차례 총선 중 거대양당의 여성후보 공천이 30%를 넘긴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여성 공천 비율 높이는 견인 장치는 없어

빈틈이 드러나 개정이 시도되었으나, 기존 거대정당에 유리한 조건은 고스란히 이어졌다. 여성후보를 30% 이상 추천한 정당이 있을 경우 이 정당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게 한 규정을 없앤 대신, 여성후보를 10% 이상 추천한 모든 정당이 여성 비율과 동시에 의석수, 득표율 따라 보조금을 나눠 갖도록 했다. 소수정당에 일방으로 불리한 ‘전국 지역구 총수’ 기준은 그대로 남았다. 여성 공천 비율을 높이도록 견인하는 장치 없이 거대정당끼리 보조금을 나눠 먹기 쉬운 형태의 법이 되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1대 총선 각 정당 지역구 공천 여성후보 비율. 붉은색이 개정안을 적용할 시 여성추천보조금을 받게 되는 정당.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제공
21대 총선 각 정당 지역구 공천 여성후보 비율. 붉은색이 개정안을 적용할 시 여성추천보조금을 받게 되는 정당.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제공

실제 개정안을 지난 21대 총선 결과에 대입하면, 현행 정치자금법으로는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전체 지역구 총수 대비 여성후보 추천 비율 기준 10%를 넘겨 여성추천보조금을 받게 되지만, 여성 비율이 21.3%(75명의 후보자 중 16명)로 민주당(12.6%, 253명 중 32명)과 미래통합당(11%, 236명 중 26명)보다 2배 이상인 정의당은 여성추천보조금은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전체 지역구 총수 대비로는 6.3%에 그친 탓이다.

공천 비율 안 지키면 보조금 ‘삭감’ 합의했지만

여성계에서는 여성후보 추천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현행 방식이 아니라 일정 비율을 지키지 못할 경우 국고보조금 일부를 깎는 ‘네거티브’ 방식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본다.

2000년 남녀 동수 출마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동수법’을 통과시킨 프랑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프랑스의 동수법은 하원의원 선거에서 동수로 후보를 공천하지 않은 정당의 국가지원금을 삭감하는 ‘페널티’를 부여했다. 2002년 10%대에 머물던 프랑스 하원의 여성의원 비율은 동수법 개정으로 국가지원금 삭감 규모가 커진 2007년부터 빠르게 늘어 2017년 선거 뒤 여성의원 비율은 38%에 이르게 된다.

한국에서도 이미 지난 2019년 3월 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의 원내대표가 “30% 여성 공천 규정을 의무 규정으로 바꾸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국고보조금을 삭감하는 방안”에 합의한 바 있다.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제안한 방안이다. 이후 ‘여성후보를 30% 이상 공천하지 않으면 해당연도 경상보조금을 15% 감액’하는 법안(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 ‘해당연도 선거보조금 20%를 감액’하는 법안(민주당 김상희 의원), ‘매해 경상보조금 20%를 감액’하는 법안(민주당 제윤경 의원)이 제출됐지만 흐지부지됐다.

권수현 여·세·연 대표는 “이번 개정안은 두 정당이 보조금을 못 받게 하던 문턱들을 제거한 것이지 여성후보를 더 공천하도록 만드는 방향의 개정이 아니다”라며 “여성추천보조금 제도가 정당에 여성후보 추천 제고를 위한 유인 작용을 하나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개정안으로 오히려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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