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장관 후보자 신분이었던 지난 4월11일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예고한 대로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을 폐지하는 여가부 내년 예산안이 지난 8월30일 국무회의에서 확정됐다. 그런데 여가부가 사업 폐지가 결정됐는데도 국회엔 ‘그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1일 <한겨레>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권인숙·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자료를 종합하면, 올해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에 예산 4억5000만원을 편성했던 여가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이 사업명을 뺐다.
기획재정부 최종 심의를 거쳐 이 예산안이 결정된 시점은 8월20일이다. 여가부는 그로부터 엿새 뒤인 8월26일 국회 여가위에 서면 답변 자료를 냈다. 권인숙 의원의 ‘내년도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 추진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의에 여가부는 “내년 예산은 현재 심의 중으로 사업 계획은 미정”이라고 답했다. 전자문서 형태의 이 서면 답변 자료가 완성된 시점은 국회 제출일과 같은 8월26일이다. 여가부가 답변 자료 작성을 위해 각 담당 부서로부터 답변을 취합한 기간이 8월18일∼25일인 점을 고려해도,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을 없앤 내년도 예산안이 결정됐는데도 국회에 ‘내년도 사업 계획 미정’이라고 답한 것이다.
여가부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7월4일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뒤 내내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 지속 여부를 놓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권성동 원내대표의 문제 제기 바로 다음날 사업 재검토를 결정한 여가부는 7월28일 사업 위탁운영 단체인 사회적 협동조합 ‘빠띠’에 사업 중단을 통보했다.
그뒤 여가부는 8월1일 버터나이크 크루 사업을 ‘지역 청년 공감대 제고’ 사업으로 대체한 예산안을 기재부에 제출했다. 그런데 여가위 소속 민주당 의원 보좌진이 기재부가 검토 중인 내년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 예산 계획서를 제출해달라는 요구에 여가부는 1일 기재부에 낸 것과 다른 자료를 4일 제출했다.
여가부가 보좌진에게 공개한 예산안은 김현숙 장관 취임 직후인 지난 5월 말 내년도 예산안 1차 심의 단계에서 여가부가 기재부에 제출한 예산안이다.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을 내년에도 유지하는 대신 올해보다 약 10% 적은 4억100만원의 예산이 배정된 예산안이었다. 결국 기재부에 8월1일 제출한 예산안이 아닌, 5월 말에 제출한 예산 계획서만 야당 보좌진에게 제출한 셈이다.
여가부는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을 없애면서도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양이원영 의원실이 기재부로부터 받은 여가부의 ‘2023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를 보면, 이 사업이 최근 3년간 국회 또는 감사원, 국무총리실, 시민단체, 언론 등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사업에 해당하는지를 밝히는 항목에 ‘해당 없음’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권인숙 의원이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 중단의 구체적인 근거 또는 외부 자문 결과가 있었는가’라고 질의하자 8월26일 제출한 서면 답변 자료에서 “그동안 동 사업의 젠더 갈등 해소 효과성, 성별 불균형 등의 문제 제기가 있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가부는 ‘지역 청년 공감대 제고’ 사업을 내년 신규 사업으로 지정하고 4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 신규 사업은 취업, 주거, 안전 등을 주제로 지역 청년들이 참여하는 토론회와 토크 콘서트 등을 진행하는 사업이다.
양이원영 의원은 “이 대체 사업은 여가부가 맡고 있는 양성평등 정책, 권익증진 정책, 청소년 정책, 가족 정책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며 “여가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양성평등정책 기반강화 사업’예산과 ‘양성평등정책 조정‧협의’사업은 삭감하면서 청년 대상 사업에 예산을 책정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 2022년 예산 산출내역에 있던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버터나이프 크루)이 2023년도 예산안에서 삭제됐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올해 4기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 참가자들이 결성한 ‘버터나이프 크루 정상화 공동대책위원회’는 양성평등주간(9월1일∼7일) 첫날인 이날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대위는 “성평등은 헌법에 명시된 평등의 가치다.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 폐지는 단지 하나의 사업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회의 성평등 수준을 후퇴시키는 결정”이라며 “일상 속 안전을 위한 노력이 어떻게 후순위가 될 수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공대위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시민 1만4848명이 참여한 ‘사업 정상화와 여가부 폐지 반대 요구 서명’을 여가부에 전달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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