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여성살이 /
대학 다니는 딸 아들을 둔 또래 친구들이 모이면 나중에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을 길러줘야 할 것인가에 의견이 분분하다. 딸이고 며느리고 사회생활을 할 터이니 국가가 보육책임을 떠맡는 획기적 정책이 시행되기 전까진 ‘친정엄마 보육원’이 쭈~욱 영업을 계속해야 하는 게 아직 현실이다. 모두들 한숨. 까놓고 떠들진 못해도 억울한 게 사실. 엄마들의 애프터 서비스 기간은 도대체 어디까지여야 하는 것일까? 무제한이어야 한다면 눈앞이 캄캄하다.
아이들은 부모들의 ‘조건없는 사랑’이 평생 계속될 것으로 믿는 눈치다. 아이 하나둘 기르고 가르치는 데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을 쏟아 붓건만 별로 고마워 하지 않는다. 부모들의 의무 양육 기간이 끝났어도 집을 떠나려 하지 않는 자식들이 늘어 골치라고 한다. 품질 좋은 ‘의식주 서비스’가 공짜로 제공되는데 굳이 독립할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다나. 일부는 결혼비용과 신혼집 마련 비용까지 기대하는 듯하니 노후 준비까지 해야 하는 부모들로선 억장이 무너진다.
한편 친정 부모나 시부모의 ‘과잉접대 요구’에 시달린다는 자식들의 볼멘 소리 또한 적잖이 들린다. 추석과 설 명절 뿐 아니라 생신이나 공휴일 등에 수시로 가족모임 참석과 ‘촌지 지참’을 기대하는 양가 부모들 등쌀에 그만 “모든 기념일들이 싫어졌다”는 이들이 꽤 있다.
이쯤 되면 가족관계의 새로운 예의범절도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닌가? 모든 사랑에는 예의범절이 필요하다. 부모의 의무양육 서비스 패키지에 감사하는 마음은 기본. 왜 범사에 감사하면서 뼈빠지는 부모의 서비스에 감사하지 않는가? 자식들 일반에게 창궐하는 병이 바로 고마워할 줄 모르는 병이다.
자식들의 선물과 촌지를 기다리는 부모들도 과잉기대를 버려야 할 것 같다. ‘어린 아이 세 살이면 부모 은혜 다 갚는다’는 옛말을 기억할 일이다. 태어난 후 3년 동안 눈부신 재롱 공연으로 부모를 즐겁게 했으니 굳이 효도 같은 걸 기대하지 말라는 선인들의 지혜. 기대하면 할수록 상처받기 때문이다.
효도는 그저 보너스 또는 선물 같은 것이다.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고 생각하는 이들일수록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보상을 바라면 바랄수록 실망은 크게 마련. 바로 여기 섭섭증이 발생할 여지가 있고 모든 섭섭증은 자해일 뿐이다.
혈연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돌봄 의무에도 유효기간을 정해 보는 건 어떨까? ‘조건없는 사랑과 투자’는 양육기간에 한한다는 그런 규정 말이다. 그 다음엔 인간관계의 보편적 원칙이 지켜지는 그런 모드로 바꾸어 적응해야 한다. 뭐, 천륜 모독이라고? 그러나 신성한 천륜을 오래 지키려면 혈연의 이름으로 강요하는 헌신이나 희생이 어느 일방에 멍에가 되지 않는 적정 수준이어야 하지 않을까? 박어진/ 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혈연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돌봄 의무에도 유효기간을 정해 보는 건 어떨까? ‘조건없는 사랑과 투자’는 양육기간에 한한다는 그런 규정 말이다. 그 다음엔 인간관계의 보편적 원칙이 지켜지는 그런 모드로 바꾸어 적응해야 한다. 뭐, 천륜 모독이라고? 그러나 신성한 천륜을 오래 지키려면 혈연의 이름으로 강요하는 헌신이나 희생이 어느 일방에 멍에가 되지 않는 적정 수준이어야 하지 않을까? 박어진/ 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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