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여성살이 /
결혼으로 얻은 건 한둘이 아니다. 다섯 시누이가 둘씩 낳은, 세살부터 열여덟살 ‘고딩’까지 모두 열명의 아이들에게 나는 외숙모라고 불린다. 경주 사는 큰 시누이가 학교와 학원 방학을 틈타 ‘초딩’과 ‘중딩’ 두 아이를 데리고 서울에 왔다. 일년 중 가장 더운 7월 말 토요일. 아이들은 케이티엑스 타는 것과 63빌딩 구경을 제일 하고 싶었단다.
온 가족이 관광 가이드가 되어 첫발을 디딘 곳은 이태원. 마침 일요일 오전이라 브런치 식당을 골랐다. 베이컨과 치즈를 넣은 오믈렛과 베이글 샌드위치로 미국 주말 가정식 백반 분위기를 내보자는 내 말에 아이들은 흥분했다. 경복궁과 민속박물관을 구경하고 나니 오후 3시. 박물관 앞뜰엔 젊은 사물놀이패가 중복 더위보다 더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인사동에서 만난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의 중년 서양 오빠들은 섹소폰과 튜바, 그리고 낡은 기타로 ‘베사메무초’와 올드 팝을 연주했다. 어느 종교단체 회원들이 벌인 퍼포먼스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할례에 반대하는 선언이라나. 메시지는 무거웠지만 반쯤 벗어젖힌, 경쾌한 행렬이 차없는 인사동의 평화로운 오후에 더없이 어울렸다. 다음은 100년 된 설렁탕집의 깍두기 맛을 볼 차례. 첫날의 강행군에 아픈 다리를 두드리며 우리 모두는 게 눈 감추듯 설렁탕 한 그릇씩 해치웠다. 온나라가 떠들썩할 정도로 복원한 청계천을 걸어보는 것 또한 두 어린 경주 시민들에게 서울을 온 몸으로 느끼는 짜릿한 순간을 준 것 같았다.
다음 날은 영화를 보기로 했다. 개봉되자마자 날마다 한국 영화의 기록을 모두 깨고 있는 영화를 만장일치로 골랐다. 4천원짜리 조조로 영화를 보고 내친 김에 여의도 둔치로 직행, 원효대교 밑을 걸으며 영화에 등장하는 문제의 하수구가 어딜까 찾아다니기도 했다. 맛집 찾아 다니기도 빼놓을 수 없는 일정. 남대문 시장 갈치조림집의 다락방 한 귀퉁이를 비집고 앉아 아이들은 양은남비 바닥을 긁어댔다. 임진강의 메기와 참게 매운탕, 동네 먹자 골목 불닭집까지 우린 쉴새 없이 떠들어대며 건배를 외쳤다.
저녁엔 마주앉아 수박을 쪼개며 하루의 일정을 복습했다. 남편은 어린 날 가장 친했던 여동생인 큰 시누이와 옛 이야기를 나눴고 아이들은 인터넷 과제물 검색과 게임 정보 교환에 열을 올렸다. 시누이는 서울 조카들을 위해 김밥을 말고 오무라이스를 만들었다. 여드름 손질법을 고모에게 ‘전수’받은 아들 녀석은 사촌 동생에게 아끼던 판타지 소설 12권을 선물했다.
4박 5일, 평소 명절에만 만나던 외삼촌과 외숙모를 멀리서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빛이 부드럽게 풀리는 걸 감지한 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 시누이와 조카들을 보내고 돌아서며 이제 할머니가 되신 두 분 외숙모의 모습을 떠올렸다. 작은 집 살림을 차린 외삼촌 때문에 평생 가슴앓이를 하시면서도 언제나 기발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어린 조카들을 웃겼던 작은 외숙모, 여고생이던 나를 영등포의 어느 길가 포장마차로 데려가 쓴 소주 한잔에 붉어진 얼굴로 인생 살이의 팍팍함을 털어놓던 큰 외숙모. 나는 외숙모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리며 꼼장어 구이에 더 집중했던 철부지였으니. 오랜 친구같은 두 분 외숙모께 진 사랑의 빚을 나는 오늘 조금 갚은 것일까?
박어진/ 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