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여성살이 /
쓸쓸하지 않으면 11월이 아니다. 늦가을과 초겨울의 경계, 왠지 조금씩 우울해진다. 가을병이다. 느닷없이 옛 남자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그들 하나하나와 주고 받은 이야기는 별로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함께 했던 순간들의 사소한 디테일로 그들은 기억된다. 지하철 벽에 걸린 칼루아 광고는 잊고 있던 한 사람을 순식간에 불러온다. 칵테일 바에서 언제나 ‘블랙 러시안’을 주문해 칼루아 향을 음미하던 그를 지하철 광고판 앞에서 다시 기억해 내다니.
아이 둘을 낳고 몇 년 만에 나간 동창 모임에서 옛 남자 친구 하나를 만났더니 대번 말화살이 날아왔다. “눈빛이 흐려졌어.” 읔, 정면으로 쳐다보지도 않고 나를 스캐닝하던 그의 날카로운 일별. 낮은 목소리에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월급쟁이 생활에 지치고 아이 딸린 아줌마 처지에 그저 편하게 입고 나간 옷 매무새 탓이었을까? 애써 스스로를 변호해보지만 그의 말이 사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그들에게 참 많은 것을 받았다. 책을 가져다주고, 좋은 연극에 데려다주고, 내가 지원했던 직장 입사 정보에 모의 면접 스파링까지 나보다 열심히 뛰어주던 그들. 언제나 모두 과분했다. 그럼에도 그들과 결혼하지 않은 건 잘 된 일이다. 사랑은 결혼 같은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생활비 분담 내역과 청소, 설거지 분담 비율을 놓고 악다구니하는 결혼의 쪼잔한 일상을 그들 중 누구와 나눌 생각은 애초 없었던 걸까? 아니 소심했던 내가 그 모든 것을 미리 겁내 달아난 것 같기도 하다.
가끔 머리숱이 엷어진 은발의 그들이 온다. 좋은 와인이나 작은 향수 한 병을 내게 건네며. 남편에게 절대 못 사주는 럭셔리 브랜드 넥타이를 큰 맘 먹고 준비한다. 반갑게 손을 마주 잡고 길가 카페 테라스에 앉는다. 담배 연기 숨 막히던 대학 근처 다방에 같이 앉아 마구 마셔대던 블랙 커피는 녹차나 인삼차로 바뀐 지 오래. 70년대 민주주의를 토론하던 우린 이제 내 남편과 그의 아내 이야기를 나눈다. 은퇴 후 계획과 체중관리도 우선 순위 관심사. 서로의 아이들을 본 적은 없지만 거의 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녀석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내 눈가의 잔주름을 바라보면서도 예전의 생기발랄이 여전하다며 치켜세우는 외교적 멘트가 밉지 않다.
결혼 생활에 얽힌 책임 의무나 이해관계 없이 누리는 옛날 애인의 지위. 그저 좋은 느낌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위치가 좋다.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은 그들에게 나 역시 괜찮은 옛 여자친구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바로 이것이 스스로 뱃살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 환장하게 맛있는 치즈 케이크 두 번째 조각을 포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3년에 한번 만나더라도 말이다. 사랑은 떠나도 사랑의 기억들은 유비쿼터스하다. 더구나 그 기억들은 그리움이라는 아우라를 지닌다. 내 젊은 날, 그 황금시대를 함께 한 그들 모두를 축복한다. 같이 나이 먹어 가는 기분, 좋다.
박어진/ 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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