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화폐속 여성 인물
신사임당은 유교 가부장제가 만든 이상적 여성
현대 여성에게 긍정적 역할할 여성 인물 필요
현대 여성에게 긍정적 역할할 여성 인물 필요
한국은행이 2009년 발행 예정인 고액권 새 화폐의 여성 인물로 신사임당 선정이 유력해짐에 따라, 여성계에서 반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안티페스티벌 등 문화운동을 펼쳐온 (사)문화미래 이프(대표 엄을순·이프)에서는 2일 새 화폐 여성 인물 신사임당 선정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어 전면적인 재검토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으로 이를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이프 쪽은 “새 화폐 인물로 여성의 선택이 유력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나, 신사임당은 부계혈통을 성공적으로 계승한 현모양처로서 지지되고 있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프 쪽은 “신사임당은 역사적 인물로서 남편과 자식들을 훌륭하게 입신양명시킨 유교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이상적 여성의 전형으로 현모양처에 예술적 재능까지 성공적으로 펼친 것으로 해석되는 신사임당이 화폐인물로 선정될 경우, ‘모성’ 신화가 살아있는 가운데 사회진출이 고무되는 상황에서 현대 여성들이 겪는 이중 노동을 정당화할 우려가 높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프는 성명서를 통해 외국의 화폐 여성인물은 “호주·노르웨이·스웨덴의 경우는 음악가와 소설가가, 프랑스·이탈리아의 경우는 과학자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경우는 여성운동가와 정치가가 화폐인물로 선정되었고 최근 일본이 메이지 시대 폭넓게 사랑받았던 소설가를 화폐 인물로 선정”하고 있다면서 “세계적 흐름이 이러한데도 현모양처로 부각돼 있는 신사임당을 화폐인물로 선정하고자 하는 것은 국가적 망신이자 여성인력 활용을 통한 국가발전이라는 정책방향과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희정 이프 사무국장은 “화폐에 여성이 한 명 들어간다는 사실보다는, 어떤 여성이냐가 중요하다”며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정체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어머니=여성’이라는 한 면만을 대표하기보다는 현대 여성들에게 긍정적 역할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여성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프는 대안으로 소서노, 선덕 여왕, 허난설헌, 만덕, 유관순, 나혜석 등 다양한 여성들을 제시했다. 또 새 화폐 여성인물 선정과 관련해 ‘새 시대 새 여성’을 상징할 수 있는 인물이 선택될 수 있도록 폭넓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여성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여성화폐 인물 및 모든 후보 인물들에 대한 선정 경위를 투명하게 할 것을 요구했다.
서명운동은 온라인이프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데, 3일 만에 500여명이 넘는 지지자들의 서명이 이어지고 있다고 이프 쪽은 밝혔다. 이프는 5일 여성의 밤길 안전을 촉구하는 제4회 여성전용파티 시청앞밤마실 행사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확산하고, “여성의 정체성이 현모양처 안으로 포획되는 것에 대한 적극적 저지 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