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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파이팅! ‘우생순’ 공감하는 한국여성들

등록 2008-01-24 19:20

김연/소설가
김연/소설가
2050여성살이/

방학을 맞은 딸이랑 날마다 으르렁거리며 싸우다 화해협력 조성 차원에서 영화를 보러 갔다. 딸의 의견 따위 묻지 않고 내 맘대로 고른 영화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대한민국의 쟁쟁한 여배우들이 합숙훈련까지 해가며 오고 가는 파스 속에 다져진 팀워크로 만든 영화라니, 더구나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라니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개봉 날 극장을 찾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영화 상영을 기다리며 홍보 전단을 뒤적거리던 딸애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엄마, 감독이 여자야? 남자야?” 딸의 그 질문은 아주 오래전 내가 가수 트레이시 채프먼(Tracy Chapman)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했던 질문과 같은 것이었다. “여자야! 멋있지 않니? 이건 너한테만 하는 이야긴데 엄마가 성차별주의자잖아. 여성들을 좀 더 챙겨주려고 애쓰는. 그래서 온 거야.” “엄마, 나 핸드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실은 엄마도 그래!”

영화는 우리 모녀의 심금을 울렸다. 초반에 ‘대한민국 아줌마의 힘’을 과장된 톤으로 부각하는 게 불편해 냉정한 관객 줄에 서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로 말할작시면 제도적 가족에 넌더리를 치고 사는 사람이므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거리두기’가 무너져 내렸다. ‘수도꼭지’인 나는 계속 울었고 엄마 옆에선 울지 않는 캔디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내 딸마저도 울었다.

특히 이혼한 대한민국 여성의 사회적 현주소를 묻는 극중 김혜경(김정은)과 기득권 남성과의 대사에 이르러서는 딸은 혀를 수차례 차더니 대한민국에서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엄마가 새삼스러워졌는지 고개를 잠시 숙이기도 했다. “내 인생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냐?”고 자조하던 극중 한미숙(문소리)의 대사는 바로 나의 독백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녀가 그랬듯 나에게도 ‘포기’란 배추를 세는 단위에나 쓰이는 단어일 뿐이다. 나, 포기 안 할 테니 당신들도 포기하지 말라구! 끝까지 가보는 거야!

영화를 보고 나서 딸은 ‘엄마 같은’ 사람만 이 영화를 보는 모양이라며 썰렁했던 극장을 아쉬워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우생순’을 검색 해 보니 흥행돌풍이란다. 울 딸이 제 맘대로 정의하는 ‘엄마 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때로는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난 핸드볼과 전혀 인연이 없는 게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새로 부임한 열정적인 젊은 여선생님이 반에서 여자 애들 몇 명을 골라 핸드볼 팀을 꾸렸었다. 신체 조건이 적합하다는 이유로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발되었던 내 인생의 전무후무한 몇 달간의 선수 생활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런 의문이 들었다. 30년도 훨씬 전에 어인 이유로 우리의 담임선생님은 여학생들에게 다른 종목도 아닌 굳이 핸드볼을 선택해서 선수로 키우고 싶으셨던 걸까? 지금은 은발의 멋진 할머니가 되셨을 선생님, 건강하시지요?


김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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