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달팽이형’ 인간의 미덕

등록 2008-04-17 21:39

박어진/칼럼니스트
박어진/칼럼니스트
여성살이2050
20대와 30대 때 나는 화를 많이 냈다. 급한 성미 탓이다. 상대가 느릿느릿한 걸 참기 힘들었다.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내 속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행동하는 얄미운 상대방을 향해 그래도 웃어주는 센스를 발휘하려니 화를 삭히기 힘들었다.

어느 날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읽다가 마주친 구절, “라다크에서는 화 잘 내는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심한 모욕이다.” 윽, 나 같은 부류가 가장 품질 낮은 인간이라니. 화가 더 났다. 그러면서도 수긍이 갔다. 화가 나는 건 내가 옳다는 생각 때문일 경우가 많다.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는 전제 없이 화가 나기는 힘들다. ‘차이’를 인정하지도, 견디지도 못하는 나의 편협함이 내 맘속을 불바다로 만든 방화범이었던 것이다.

반성 모드로 급전환한 나. 가만히 보면 느린 페이스에는 나름의 이유와 합리성이 있다. 느린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치밀하고 꼼꼼하다. 덜렁이인 내가 간과하는 디테일 처리에 휠씬 유능하고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성격도 온화하고 감정 기복이 덜하다. 나는 ‘달팽이’형 인물들의 미덕에 대해 눈을 떴다. 빠른 일처리라고 자부했던 내 스타일이 조급증의 소산이었음을 인정하는 한편 내 급한 속도를 상대에게 강요했던 무례를 반성하기에 이르렀다.

절대 정의와 절대 선이 걸린 공적 사안들을 제외하고 나면 옳고 그름의 판별이 모호한 회색 지대가 우리 일상 중 80퍼센트 이상이 아닐까? 나와 생각이 다른 남을 틀렸다고 매도할 뻔한 경우에도 차츰 내 스스로의 판단을 의심하고 되돌아보게 됐으니 말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어. 서 있는 곳이 다르니 얼마든지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드니 섭섭함이 대폭 줄어들었다. 섭섭하다고 느끼는 부분에 대해 화내지 않고 상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술을 습득, 연마한 것도 큰 소득이다. 사소한 섭섭증이 쌓여 친구를 잃었던 아픈 경험을 여러 번 한 내겐 극적인 반전이었다.

확실히 예전보다 화가 덜 난다. 나만 옳은 게 아니고 남도 옳다는 걸 인정하게 되니 화 날 일이 줄어든 것이다. 화가 났다가도 금방 풀려버리는 경우가 많다. 남들처럼 내 판단 또한 언제든 틀릴 수 있는 것을 아는 처지에 어찌 화를 내겠는가? 예전에 화를 참는 건 고통스러웠다. 그건 억지니까. 화가 덜 나니 더 자주 웃게 된 나. 내 꿈은 ‘잘 웃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성공 예감!

박어진/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