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어진/칼럼니스트
여성살이2050
20대와 30대 때 나는 화를 많이 냈다. 급한 성미 탓이다. 상대가 느릿느릿한 걸 참기 힘들었다.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내 속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행동하는 얄미운 상대방을 향해 그래도 웃어주는 센스를 발휘하려니 화를 삭히기 힘들었다.
어느 날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읽다가 마주친 구절, “라다크에서는 화 잘 내는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심한 모욕이다.” 윽, 나 같은 부류가 가장 품질 낮은 인간이라니. 화가 더 났다. 그러면서도 수긍이 갔다. 화가 나는 건 내가 옳다는 생각 때문일 경우가 많다.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는 전제 없이 화가 나기는 힘들다. ‘차이’를 인정하지도, 견디지도 못하는 나의 편협함이 내 맘속을 불바다로 만든 방화범이었던 것이다.
반성 모드로 급전환한 나. 가만히 보면 느린 페이스에는 나름의 이유와 합리성이 있다. 느린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치밀하고 꼼꼼하다. 덜렁이인 내가 간과하는 디테일 처리에 휠씬 유능하고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성격도 온화하고 감정 기복이 덜하다. 나는 ‘달팽이’형 인물들의 미덕에 대해 눈을 떴다. 빠른 일처리라고 자부했던 내 스타일이 조급증의 소산이었음을 인정하는 한편 내 급한 속도를 상대에게 강요했던 무례를 반성하기에 이르렀다.
절대 정의와 절대 선이 걸린 공적 사안들을 제외하고 나면 옳고 그름의 판별이 모호한 회색 지대가 우리 일상 중 80퍼센트 이상이 아닐까? 나와 생각이 다른 남을 틀렸다고 매도할 뻔한 경우에도 차츰 내 스스로의 판단을 의심하고 되돌아보게 됐으니 말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어. 서 있는 곳이 다르니 얼마든지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드니 섭섭함이 대폭 줄어들었다. 섭섭하다고 느끼는 부분에 대해 화내지 않고 상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술을 습득, 연마한 것도 큰 소득이다. 사소한 섭섭증이 쌓여 친구를 잃었던 아픈 경험을 여러 번 한 내겐 극적인 반전이었다.
확실히 예전보다 화가 덜 난다. 나만 옳은 게 아니고 남도 옳다는 걸 인정하게 되니 화 날 일이 줄어든 것이다. 화가 났다가도 금방 풀려버리는 경우가 많다. 남들처럼 내 판단 또한 언제든 틀릴 수 있는 것을 아는 처지에 어찌 화를 내겠는가? 예전에 화를 참는 건 고통스러웠다. 그건 억지니까. 화가 덜 나니 더 자주 웃게 된 나. 내 꿈은 ‘잘 웃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성공 예감!
박어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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