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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식탁 위에 ‘고기 덜먹기’ 촛불을

등록 2008-06-26 19:07

박어진/칼럼니스트
박어진/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우리 사무실의 젊은 후배 둘이 최근 채식을 선언했다. 전에도 채식으로의 전향을 한두 번 고려한 적이 있었다는 그이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이 불러일으킨 소용돌이 와중에서 그동안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생선을 포함한 해물, 우유와 유제품을 먹으니 100% 채식인은 아니다. 유연한 채식주의라고나 할까. 채식 적응기의 첫 단계로 둘 다 채식 식당이나 메뉴 검색에 열심이다. 콩 요리에 특히 관심이 많아 두부 스테이크 레시피 등을 교환하며 전환기의 심리적 불안을 서로 다독거린다.

우리 모두에겐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탓이다. 채식이 유별나고 까탈스런 취향으로 취급당하는 현실도 이 전국민적 강박증과 관계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쇠고기 공장의 작업 라인이 오늘 밤에도 아홉시 뉴스를 도배한다. 거꾸로 매달린 소들은 이미 부위별 쇠고기일 뿐, 바로 얼마 전까지 두 눈을 껌벅이던 생명체였다는 사실에는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다. 쇠고기 소비자의 시선으로 그 장면을 바라볼 뿐이니 말이다. 동물을 가둔 채로 키우는 공장식 축산 체제의 비정한 사육 방식과 기계적 도축 과정을 거쳤을 소들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해 몸서리가 쳐진다.

올봄, 우리는 많은 닭들을 죽였다. 조류독감의 피해를 입을까봐 조류독감의 진짜 피해자인 닭들을 살처분이라는 간단한 사형선고로 ‘처리’해 버렸다. 숫자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대량 살육의 실상이다. 쇠고기와 닭고기가 안전하지 않으니 돼지고기를 먹겠다고들 한다. 과연 안전한 선택일까? 항생제나 성장촉진제 같은 화학물질의 과다 투여를 당하지 않은 육류가 있기나 할까? 육류로 분류되는 소와 돼지와 닭들에게 미안하다. 우리에겐 엄마 소와 송아지 누렁이에게 가족 지위를 부여했던 시절의 기억이 있다. 송아지를 핥아 주며 진한 엄마 사랑을 표현하던 소들은 이제 엄마라는 지위를 박탈당하고 한낱 암소 고기 한 마리분으로 존재할 뿐. 대규모 공장 축산과 광우병은 인간의 식탐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다.

안전한 쇠고기 확보를 넘어 ‘고기 덜 먹기’ 시민행동으로 나아가려는 촛불이 켜졌으면 좋겠다. 이제는 마음가짐과 생활방식의 전환을 위해 촛불을 켤 때다. 나도 삼겹살 미팅이나 생맥주 치킨 회식을 줄여 볼 참이다. 혁명은 이제 개개인의 식탁에서 실천하는 데 있다.

박어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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