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소설가
2050 여성살이
손꼽아 딸의 방학을 기다렸다. 모레! 내일! 오늘! 야호! …피식 … 그만 바람이 빠졌다. 방학을 해도 보충수업이 날마다 있단다. 애가 보충수업이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수업은 학생의 몫이니깐. 문제는 변함없는 기사 노릇 하기.
군내버스는 하루 네 차례 동네에 들어온다. 학기 초, 날아가는 기름값과 운전의 지겨움으로 기사는 파업을 선언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새벽차를 타고 학교에 다니던 딸. 학교가 문을 안 연단다. 네 발자국을 세면서 학교까지 천천히 걸어가라고 했다. 학교에서 종일 존다는 불만 사항 접수 뒤엔 좋은 꿈 꾸라고 축복해 줬다. 그러다 그만 돌발 상황 발생. 평생 해 본 적 없는 새벽밥 해 주느라 내가 종일 꿈을 꾸고 있는 거다. 할 수 없이 모녀가 아침 단잠을 즐기기로 하고 기사 업무 복귀.
중3 여름방학 맞이 퍼포먼스는 집단 파마. 읍내 헤어뱅크 언니와의 굳은 의리마저 저버리고 춘천으로 진출하여 새로운 스타일로 변신한 딸과 함께 학교에 갔다. 보충수업과 관련한 딸의 애로 사항을 해결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딸이 미리 적어 준 대사를 소화하려는데 이거 자꾸 대본에도 없는 애드리브가 튀어나온다. 말을 할수록 선생님과 나는 서로 다른 별에서 왔음이 절망적이게도 분명해진다. 허무 개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딸의 사인에 따라 서둘러 마지막 대사를 날렸다.
A별: 애가 사정상 수업에 빠지더라도 체벌은 하지 말아 주세요!
B별: 맞는 것 싫으시죠? 맞을 짓을 안 하면 됩니다.
세상에 맞을 짓이란 없는 거라고, 어떻게 아직도 학교 체벌에 그리도 당당하실 수 있냐고, 최소한 구차한 변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폭력으로 밥 말아 먹는 세상에서 교육 현장부터라도 폭력은 사라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 조목조목 따졌더냐? 학교에 찾아간 학부모 역할극답게 비굴한 웃음으로 방학인데 쉬지도 못하고 고생하신다고 마지막 입발림말을 날리고 퇴장했더랬다.
얻어터지거나 쫓겨나든 간에 딸은 친구들과의 은밀한 계획을 실행하고야 말았다. 이름하여 1박2일 놀이! 딸로 말하자면 은지원을 비롯한 그 ‘1박2일’ 팀이 동네 근처에 왔을 때 ‘오빠’들을 직접 보시겠다고 5시간을 지키고 있다 텔레비전에 나온 적도 있다. 환호하는 소녀 1인으로, 2초 동안. 군인인 친구 아버지가 군 가족용 휴양지의 방을 얻어 주셨단다. 코펠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르는 소녀들이 짐을 분담하고 장을 보았다. 물놀이는 잠깐, 수다로 날을 샜단다. 슬쩍 보충수업은 빠져 주는 센스를 발휘하시고.
하여 요즘 모녀의 대화가 흥미진진, 스릴 만점이 되어 간다. 평소 방학생활의 일상에서 볼 수 없던 진풍경이다. 대한민국 교육의 멸사봉공 희생정신에 새삼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모녀가 방학 동안 들러붙어 사느라 날마다 전쟁 중일까봐 제 몸을 던져 화제를 만들어 주시고 몸을 떨게 하는 공분으로 서로에게 더욱 바짝 다가가도록 해 주고 계시니.
김연/소설가
김연/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