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아이 엠 샘>을 보면, 7살짜리 딸을 홀로 키우는 지적장애인 아버지에게서 법원이 “장애 때문에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며 양육권을 박탈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부녀의 지극한 사랑이 양부모와 법원을 감동시켜 아버지와 양부모가 아이를 함께 양육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하지만 개인의 가정 문제에 사회복지기관과 법원 등 국가와 사회가 개입하는 모습은 사생활 침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친권 및 양육권을 놓고 국가와 사회가 가정에 개입하는 기준은 ‘자녀의 이익’이다. 프랑스는 자녀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면 법원이 친권을 제3자에게 위탁하거나 위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독일도 자녀의 복리를 해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법원이 양육권 등 친권의 일부를 상실시키고 가정 위탁에 맡기는 등 조처를 한다. 미국은 법원이 다양한 기준으로 부모의 양육 상태를 판단해, 부모의 양육 우선권을 빼앗아 제3자에게 양육권을 줄 수 있다.
우리나라도 민법 제912조에서 “부모는 친권을 행사할 때 자녀의 복리를 우선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동복지법에도 어린이 보호 의무를 보호자뿐 아니라 국가에도 부여해 어린이의 복리를 위해 국가와 사회가 가정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문제는 ‘가정·아이 문제는 제삼자가 개입할 수 없다’는 통념 때문에 실제로 잘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올해 아동복지법 개정안에 “친권자가 아동을 시설에 맡겨두고 연락이 두절된 경우 친권을 제한·상실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는 등 앞으로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태도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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