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소설가
딸과 내가 텔레비전에 나온다. 교육방송 다큐프라임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세 엄마 가운데 하나로. 난 싱글맘이란 ‘특별한’ 이유로 제작진에게 선택되었다. 첩첩산중 ‘그림 같은’ 집에서 딸과 둘이 사는 싱글맘 소설가! ‘그림’이 되는지라 다큐 출연 제의를 몇 번 받긴 했다. (구체적으로 두 번!) 그때마다 울도 담도 없는 집이 미디어에 노출된다는 게 무서웠고 언론이 휘두르는 권력의 칼날에 베이기라도 할까봐 몸을 사렸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는 신념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우리의 조 피디’만큼 날 붙잡질 않았다는 게 고사의 변이다.
사는 게 그렇지만 지난가을도 무척 힘들었다. 바닥난 인간관계에 나의 오른쪽과 왼쪽을 지켜주던 양쪽 날개마저 먼 이국땅으로 약속이나 한 듯 떠나 버렸다. 외로움을 창작의 열기로 불살라보려 했지만 그조차 쉽질 않았다. 딸과 내가 이곳에서 살아낸 10년 세월을 소설로 쓰고 있었지만 난 여전히 창작의 산고보다 출판의 산고가 힘겨운 비주류 작가. 출연료에 눈이 멀었고, 소설 출판 기회를 ‘방송 출연’이란 미끼로 따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흑심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만들었다.
촬영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곤욕스러웠다. 엄마의 간청에 마지못해 촬영에 동의하긴 했지만 딸은 촬영을 아주 싫어라했다. 먼 후일에는 소중한 너의 기록이자 우리의 애틋한 역사가 되어 있을 거라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사춘기 소녀의 ‘쪽팔림’ 앞에는 속수무책. 딸이 초지일관 싫음을 고수했다면, 난 ‘스톡홀름신드롬’ 증상을 조 피디에게 농담 삼아 호소하는 쪽이었다.
조 피디가 하루하루 일상을 점검하는 게 불편하면서도 재미있었다. 낯선 길에서 헤매다 뒤차 운전자가 기어이 옆으로 따라와 창문을 내리고 고함을 지르는 수모를 같이 겪으며, 애가 이국땅으로 잠시 떠난 날 홀로 된 나와 저녁을 함께 먹으며,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갔다 튼 뱃살을 기어이 촬영한다고 화를 내다, 조 피디님 너무 순진한 거 아니에요라고 카메라 앞에서 소리를 지르다…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다. 난소에 달걀만 한 종양이 생겼다는 걸 안 것은 공교롭게도 지난겨울. 혹여 난소암은 아닐까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옆에서 괜찮을 거라고 위로해주던 이도 조 피디.
처음 촬영에 임할 땐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리라 작정했다. 딸과 씩씩하게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 모습만. 카메라 앞에서 품위 없이 울고불고 하는 짓은 안 하리라 다짐했건만… 화면에 무장해제된 맨얼굴의 내가 비칠 수 있다면 그건 그동안 친구가 되어준 조 피디를 비롯한 스태프들 덕분이다. 다큐 스태프들의 건투를 빈다!
김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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