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효경/칼럼니스트
이른바 결혼 적령기 여성인 나는 요즘 주위에서 ‘슬슬 좋은 사람 만나야지?’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지금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도 많아서 ‘별로 생각이 없다’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그러다 좋은 사람 다 놓친다는 반응과 여자도 돈만 잘 벌고 잘나가면 혼자 살아도 된다는 반응이다. 전자야 워낙 고전적인 반응이라 그렇다 치고, 후자를 만나면 나는 ‘그럼 능력 없고 가난한 여자는 혼자 살면 안 되나?’라는 의문이 든다. 사람들이 여성의 독립과 비혼(非婚)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것은 분명히 기쁜 일이지만, 문제는 언제나 이 논리가 ‘잘나가는’ 비혼 여성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과거 (여전히 지금까지도) 독신녀는 집안의 부끄러운 존재이자 쓸쓸하게 독방에서 늙다가 몇 달 뒤에 시체로 발견될 법한 이미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독신 여성들의 삶을 찬양하고 있다. 이제 독신 여성들은 과거 여성들이 아이와 남편을 위해 쓰던 시간과 돈을 자신을 위해 쓰고,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완벽한 몸매와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지고, 심지어 연애까지 똑똑하게 하는 ‘골드 미스’들이다. 그런데 그런 여자들은 대체 어디에 있지?
물론 아주 가끔 그런 여성들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싱글 여성의 삶이 그렇게 화려한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여성 노동자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과 남성들에 견줘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고려할 때, 대부분의 여성들이 자신의 힘으로 서울에 집을 마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굳이 집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평생 밥벌이를 하는 것도 녹녹지 않다. ‘싱글=화려한 삶’이라는 공식은, 비록 과거 독신 여성의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는 것에 어느 정도 기여했을지는 몰라도, 어느새 독신 여성의 삶을 너무 이상적인 것으로 만든 나머지 그 삶이 직면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덮어 버리고 있다. 비혼 여성들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여자들로 낙인찍히고 각종 세금 해택이나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 그렇다.
평범한 4인 가족에서부터 동성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 독신자 가정까지 모든 삶의 형태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 따라서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화려하고 이상적인 면만을 부각하는 방법이 그것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유일한 길은 아닐 것이다. 사실 돈도 많이 벌고 잘나갈 수 있다면 그것은 ‘멋진 싱글 여성’의 삶이 아니라 그냥 ‘멋진 삶’이 아닌가. 비록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쓸쓸하고 가난한 싸구려 미스의 삶이라 할지라도 그냥 그대로 존중받기를 원한다. 우효경/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