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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야한 옷차림이 성폭력 부른다? 왜곡된 통념 바꿀 담론 내겠다”

등록 2014-02-13 20:31수정 2014-02-13 21:21

20일 문을 여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의 권인숙 소장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상담소 사무실에서 연구소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일 문을 여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의 권인숙 소장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상담소 사무실에서 연구소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연구소 ‘울림’ 문여는 권인숙 소장
언론이 성폭력 사건 선정적 보도
공포만 키울뿐 예방에 도움 안돼
합리적 대처법 교육이 훨씬 중요
‘씻지못할 상처’라는 통념도 깨야
“통념은 힘이 세요. 성폭력상담소가 20년 이상 ‘피해자 유발론’을 깨려 노력해 왔지만 현장에서는 그대로입니다.”

20일 문을 여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의 권인숙(50) 소장은 ‘통념과의 싸움’을 강조했다. 11일 서울 마포구 성폭력상담소에서 만난 권 소장은 연구소를 세우는 취지 역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들의 반성폭력 운동 결과, 성폭력에 대한 인식 수준은 높아졌지만 잘못된 통념은 20년 전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야한 옷차림이 성폭력을 유발한다’거나 ‘남성의 성욕은 조절할 수 없다’는 등 잘못된 생각들 말이다. 논리적 근거를 마련해 왜곡된 통념 하나하나에 맞서고 새로운 담론을 확산시키는 것이 국내 유일한 성폭력 전문연구소 울림의 주된 활동 목적이다.

권 소장은 연쇄성폭행범에 대한 미국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노출이 많은 옷차림을 한 여성과 노출이 적은 옷을 입은 여성’ 가운데 노출이 많은 여성이 성폭력 피해 대상이 될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연쇄성폭행범들에게 물어보면 ‘노출이 적은 여성’을 택한다고 한다. “더 순종적일 것 같다는 겁니다. 성폭력 가해자는 무엇보다 대상의 취약성을 중시한다는 거죠. 통념과 정반대입니다.”

울림은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연구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은 20일 연구소 개소 기념 포럼에서 논의할 ‘성폭력 두려움에 관한 현황 연구’다. 성폭력 사건에 과도하게 집중된 여론의 관심과 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간접 피해’를 낳는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 대대적으로 보도될 때마다 여성들은 밤길이나 택시 등에서 일상적인 불안에 시달리곤 한다.

권 소장은 이런 간접 피해가 또다시 성폭력 대처 능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선 실제 성폭력 가해자는 텔레비전·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낯선 범죄자’가 아니라 ‘아는 사람’이 더 많다. 친족·데이트 성폭력 등은 알게 모르게 일상화돼 있다. 그런데 언론의 선정적 보도와 여론의 관심은 실제 성폭력 실태와는 달리 ‘낯선 범죄자에 대한 과장된 두려움’만 키운다. 권 소장은 “과장된 공포를 가진 여성들은 성폭력 대처 능력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연구도 있다. 공포는 예방에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과장된 성폭력 두려움을 지닌 부모가 키운 여자아이들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밤길 안 다니기’, ‘혼자 다니지 않기’처럼 수동적 경향을 띠는 등 두려움이 아이의 건강한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포와 수치’의 성폭력은 ‘증명과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권 소장의 지론이다. 그는 “성폭력은 특정한 범죄자가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내 생활의 일이다. 가해자는 ‘괴물’이 아니다. 가해자·피해자 둘 다 회피할 수 없는 생활 속의 일이므로, 공포보다 합리적 대처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울림의 올해 중점 사업 역시 ‘피해자다움’의 극복이다. 이 역시 ‘성폭력 피해 경험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일’ 등으로 규정되는 통념에 대한 도전이다. 피해자에게 보호·배려는 필요하지만, 순결주의에 기반한 시각은 평생 성폭력 상처를 놓고 슬퍼하고 우울해하며 살아야 한다는 강요를 낳을 수 있다.

권 소장 스스로 성폭력 피해 경험자다. 그것도 시국사건과 관련해 공권력으로부터 피해를 당했다. 1986년 부천경찰서 경찰이 가해자다. 이른바 ‘부천서 성고문 사건’으로 불린다. 권 소장은 “그때 일을 삶의 작은 부분으로 만든 경험을 통해 성폭력 문제를 더 투명하고 명료하게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 연구소장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성폭력 피해 경험 뒤, 그 피해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피해자라고 해서 그때 생각만 하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몇년이 될지 모르지만 연구소에 헌신해서 결과물을 내려 합니다.”

최지나 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성폭력 연구가 필요하다는 상담소의 내부적 수요와 권 소장의 의지가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다. 권 소장이 시민사회에서 상징적 인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꾸준히 성폭력 연구를 진행하신 분이라 상담소와는 ‘마음이 잘 맞는 파트너’다”라고 말했다. 여성학자인 권 소장은 군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 등 성폭력 연구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해 왔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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