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전쟁 성폭력은 가족까지 파멸시키는 인종청소와 같아”

등록 2014-07-23 18:27수정 2015-01-15 14:46

프리랜서 사진기자 정은진씨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성산동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서 다음달 15일까지 이곳에서 열리는 ‘콩고의 눈물 2014: 끝나지 않은 전쟁, 마르지 않은 눈물’ 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프리랜서 사진기자 정은진씨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성산동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서 다음달 15일까지 이곳에서 열리는 ‘콩고의 눈물 2014: 끝나지 않은 전쟁, 마르지 않은 눈물’ 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짬] ‘콩고 성폭력 사진전’ 여는
정은진 프리랜서 사진기자
한국인한테 전쟁 성폭력은 ‘지금, 나의 일’이 아니다. 지구 반대편에선 오늘도 겪는 일이라는 걸 모르거나 일쑤로 잊는다. 프리랜서 사진기자 정은진(44·사진)씨는 2008·2009년 작업한 사진으로 세계에 콩고 성폭력의 실상을 알려왔다. 지난 6월 정씨는 5년 만에 다시 콩고에 방문해 한달 동안 머물렀다. 그 결과물인 ‘콩고의 눈물 2014: 끝나지 않은 전쟁, 마르지 않은 눈물’ 특별 사진전이 24일부터 서울 마포구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서 열린다.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콩고 여성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정씨의 사진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제 시기 한국의 특수 경험이 아닌, 보편적 여성 인권 문제라는 걸 새삼 환기시킨다. “전쟁 성폭력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상대편 남성의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보편적인 심리전이다. 사진을 본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도 다른 나라에선 여전히 전쟁 성폭력이 있다는 걸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

콩고에서 하루 19건꼴 발생
성폭력 실상을 세계에 고발
2008년 ‘콩고의 눈물’로 상 받아

정대협의 ‘나비기금’ 현지 전달
“한국과 아프리카 역사는 닮은꼴
위안부 할머니 다큐작업 하고파”

정씨는 2004년부터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산모 사망률을 다룬 포토스토리로 프랑스의 세계적인 보도사진전 ‘페르피냥 포토페스티벌’에서 케어(CARE)상 그랑프리를 받았다. 이듬해 콩고 성폭력 실상을 고발한 포토스토리 ‘콩고의 눈물’로 페르피냥에서 또 다른 상을 받았다. 지금은 서울에서 외신 전문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일하며 <뉴욕 타임스>, <타임> 등에 기고한다.

2012년 콩고에서 발생한 성폭력은 7075건이다. 하루 평균 19건꼴. 정씨는 일반 성폭력과 ‘전쟁무기로서의 성폭력’을 구별했다. “전쟁 성폭력은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전술로 여성이 이용된다는 점에서 ‘전쟁무기’다. 생후 11개월 아기부터 60살이 넘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대상의 나이와 상관없이 성폭력이 자행된다. 그 집안의 가장은 딸과 부인뿐만 아니라 어머니까지 성폭력을 당한다면 큰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된다.” 잔인하게 여성을 성폭행할수록 관련된 남성들은 심리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효과적인 심리전을 수행하는 데 여성이 동원되는 것이다.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효과가 크다.

정씨한테 듣는 콩고의 성폭행 양상은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가해 남성은 성폭행을 한 뒤 나뭇가지나 꼬챙이 등으로 여성의 생식기를 추가 훼손한다. 피해 여성은 제3의 누관(漏管)인 ‘피스툴라’(fistula)가 생겨 대소변을 조절할 수 없게 되고 심한 악취로 집에서 쫓겨나거나 남편이 도망간다. 임신도 할 수 없게 된다. 정씨는 이번 작업 소개글에서 “분쟁에서 군인보다 여자로 산다는 것이 더 위험하게 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현지 유엔 평화유지군 사령관을 지낸 파트릭 카마르트의 말을 인용했다.

정씨가 본 콩고에서의 성폭력은 장기적 관점에서 ‘인종청소’와 다를 게 없다. 한 인간과 가족을 파멸시키고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인종청소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정씨는 “피스툴라 복원 수술을 하는 병원은 성폭행 피해 여성들로 꽉 차 있다”고 전했다. 이는 2008년 콩고에 다녀온 뒤 정씨가 펴낸 책 <내 이름은 ‘눈물’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 자세하게 묘사돼 있다.

정씨가 지난달 콩고를 방문한 데에는 후속 취재보다도 더 큰 목적이 있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나비 기금’을 콩고 여성들에게 전달했다. 나비 기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한테서 법적 배상을 받으면 그 배상금을 전액 전쟁 중 피해 입은 여성들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혀 2012년 발족됐다. 할머니들과 시민들이 모은 기금 2800달러는 각각 피스툴라 복원 수술 비용 및 성폭행 피해 여성들의 식비와 활동비·교통비 등에 나눠 쓰였다.

콩고 동북부 지역에서 피스툴라 복원 수술을 하는 병원은 네 곳으로 전액 국제사회의 지원금과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정씨는 “수술 비용을 지원하면 즉각 효과가 나타난다. 피스툴라 수술이 한 건당 300달러가 드는데 케셰로 병원에 600달러를 지원했으니 피해자 두 명이 나비 기금 덕분에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아프리카 취재를 통해 한국의 과거를 봤다. “한국과 아프리카의 역사가 닮아 있다. 우리도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를 받고 여성들이 위안부로 동원돼 전시 성노예 생활을 했다. 독재 정치를 겪은 것도 마찬가지다.”

정씨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을 함께 전시할 날도 올까? “위안부 생존 할머니들이 워낙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셔서 가능할지 모르겠다. 가능하다면 그분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작업이나 인물사진 작업을 하고 싶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