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평화운동가 이시우 걷기명상

등록 2005-01-26 18:05수정 2005-01-26 18:05

과연 평화로운 방법이로다!

2004년 그나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삼보일배와 단식이었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세 걸음에 한번씩 절을 하며 올라온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 천성산과 생명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키려고 지금까지 90여 일 동안 단식을 한 지율스님. 소통과 교류와 합의를 위해 우리 사회는 여전히 목숨을 건 단식과 늙은 성직자들의 무릎에서 흐르는 피를 요구하는 걸까.

이런 와중에 진행된 한 ‘건장한 남자’의 ‘걷기 명상’은 세상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유엔사령부 해체를 위한 이시우의 걷기명상. 이시우는 10년 동안 민통선 곳곳을 직접 발로 누비며 내놓은 기록 <민통선 평화기행>의 저자다. 사진집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과 <끝나지 않은 전쟁, 대인지뢰>를 펴냈고 수십차례의 사진전을 열기도 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10여 년 동안 민통선 사진을 찍다가 유엔사의 ‘힘’을 체험했다고 한다. 비무장지대·민통선 지역에서는 모든 게 유엔사 규칙에 의해 규제됐다. 경의선 연결 지뢰제거 작업의 남북 상호검증과 금강산 육로 관광객의 휴전선 통과에 제동을 건 것도 유엔사다. 우리의 문제가 우리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고 할 황당한 이야기가 바로 유엔사 문제다.

다행히 그가 선택한 방식은 자신의 몸을 치명적으로 해롭게 하지도 않고 타인에게 부담을 주는 형식도 아니었다. 나는 그가 평화운동가다운 방식을 택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50여 일 동안 배낭 하나 메고 강화도를 출발해서 휴전선을 따라 동해안까지 걷고, 또 동해안을 따라 부산까지 걸은 뒤 일본까지 건너갔다 왔다. 1500㎞를 걸으면서 구호도 외치지 않았고 응급차를 동원할 만큼 무리수를 두지도 않았다. 다만 걷고 깊이 생각하고 글을 썼다. 왜 걸어야 하는지, 왜 유엔사를 해체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고 답했다. 그러나 여름의 한가운데, 아무리 건장하다 해도 태양은 뜨겁고 지열은 몸을 달구었다. 어느 하루 그는 더위에 지쳐서 풀밭에 쓰러지다시피 누웠버렸다고 한다. 누운 채로 고개를 돌리니 들꽃 한 송이가 이쁘게, 참으로 이쁘게도 피어 있더란다. 제자리에 서서 일생을 마치지만, 벌이 날아와서 또 나비가 날아와서 자신의 분신을 가져갈 수 있도록 자신을 최대한 아름답게 만들어내고 있는 들꽃. 움직일 수는 없지만 그 상황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 벌과 나비를 부르고 그들과 함께 전세계로 날아가는 들꽃. 그 들꽃을 바라보며 그는 걷기명상의 한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피워내는 것. 우리의 운동도 그런 방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의 걷기 명상은 작고 미미하지만 존엄한 한 존재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결연한 존재선언인지도 모른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고 말하는 견고하고 치밀한 평화운동가 이시우. 홈페이지( www.siwoo.pe.kr )와 시민단체 비폭력평화물결 홈페이지( www.peacewave.net )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김현아/ ‘나와 우리’ 운영위원 khagong@empal.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