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트리 생생육아
아이가 잠을 자지 않으면 엄마에게는 고문이다. 아들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고, 깊게 자지도 않았다. 깊게 재우는 데 2시간이 걸렸고, 중간에 자주 깼으며, 엉덩이를 20분 넘게 두드려줘야 다시 깊이 잠이 들었다. 새벽 5시에 출근하는 남편을 깨울 수는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 뒤 첫 1년간 나는 3시간 이상 쭉 잠을 자본 날이 거의 없다.
수면 의식, 철저한 일정 조율, 인공 조명 차단 등 해볼 것은 다 해봤다. 소용 없었다. 걸음마를 시작한 돌 무렵에야 아이가 덜 깼다. 꿀맛 같은 잠은 얻었지만, 잠과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내 곁에 남은 것들이 있다. 바로 아기 잠이 솔솔 오게 해준다는 산더미 같은 육아 용품의 잔해들이다.
잠을 재워준다는 호박(보석) 목걸이, 엄마들은 알 것이다. 그런 말을 믿냐고 묻지 말아달라. 그만큼 잠이 간절하다. 백색소음 어플, 1시간 동안 이어지는 자장가 음원, 잠을 재워준다는 속싸개까지 아이 수면과 관련한 것들은 모두 구입했다. 수많은 수면 용품 가운데에는 내 바람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다준 것이 있다. 바로 수면 인형이다. 아기가 좋아하는 백색 소음을 들려준다는 양 인형을 임신 전 사뒀다. 아기를 낳고 자신있게 고래 울음소리를 틀었다. “끼우우우~”하고 고래가 울었다. 아기도 울었다. 양 인형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해마 인형을 샀다. 배를 건드리면 수면등이 들어오고, 자장가가 나온다. 반복적으로 틀어주면 그 노래만 들어도 졸리게 된다고 했다. 일주일도 안돼 방구석으로 발로 차넣었다. 잠을 재워준다는 북유럽산 ‘바운서’에 도전했다. 앞뒤로 흔들리는 보통 바운서와 달리, 아이의 움직임에 맞춰 위아래로 흔들거린다. 가격이 꽤 비쌌는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해달라고 남편에게 졸라 얻었다. 아들은 바운서에서 앉자마자 울더니 내려줄 때까지 울었다. 다른 아이들은 바운서에서 잘 자더라도, 내 아이는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수많은 물건들 중에서 지금까지 쓸모있었던 건 이렇다 이름난 ‘수면 용품’이 아닌, 7단계 빛조절 스탠드였다. 목욕-책읽어주기-불끄기로 이어지는 수면 의식에서 스탠드는 필수다. 마트에서 파는 곰돌이 스탠드는 단순하게 끄고 켜는 형태다. 너무 밝을 땐 급한 대로 수건이나 검은 티셔츠를 덮었다. 그런데 아이가 말을 시작하자, 가장 처음 하는 말은 “곰돌이 끄지 마, 수건 저리 가”가 됐다. 단번에 불을 끄는 것을 싫어하니, 고심 끝에 찾은 상품이 단계 조절이 되는 ‘눈부심 방지 스탠드’다. 매끌거리는 동화책을 읽어도 책장에 빛이 반사되지 않았고, 엘이디 등은 무드모드까지 포함해 7단계로 빛을 점점 약하게 내릴 수 있었다. 반으로 접어버리면 희미한 빛이 더 줄어들었다. 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아이에게 하나씩 줄이게 해줬다. 5번 정도 반복하면 아이가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기적이다. 이사갈 때 안방에서 딱 하나만 골라 집어가라고 하면, 나는 이 스탠드를 들고 갈 생각이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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