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보험금 한도 여성이 3배 많아
여가부 권고 따라 성차별 정책 개선
여가부 권고 따라 성차별 정책 개선
2002년 5월 교통사고를 당해 얼굴에 흉터가 남은(장해등급 12급) 고아무개씨(43)씨는 이듬해 1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남성인 고씨는 흉터로 인한 후유장해로 보험금 300만원을 받았는데, 비슷한 흉터가 있는 여성이라면 12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다. 당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자배법)’ 시행령은 유사한 흉터라도 남녀의 등급을 달리하도록 규정했다. 고씨가 여성이라면 (12등급보다 높은) 7등급을 적용받게 되는 식이다. 인권위는 자배법 시행령이 남녀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이라며 당시 건설교통부장관한테 관련 조항의 개정을 권고했다. 2004년 건교부는 이를 받아들여 남녀 구분에 따른 장해등급 차별을 없앴다.
하지만 교통사고가 아닌 백화점 등 대형건물 화재로 외모에 흉터가 남은 경우엔 지금도 성별에 따라 보험금이 달라진다. ‘화재로인한재해보상과보험가입에관한법’(화보법) 시행령에 남녀 차별 조항이 남아 있어서다. 이에 따라 백화점이나 의료시설 등에서 발생한 화재로 ‘외모에 뚜렷한 흉터가 남은 경우’ 여성은 보험금 한도액이 3200만원(장해등급 7급)인데, 남성은 1000만원(12급)이다.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던 시대의 고정관념이 법령에 스며들어 잔존해온 사례다.
이런 성차별 사례를 개선하려고 여성가족부(여가부)는 각종 제도나 정부 정책·사업을 양성평등 관점에서 분석해 개선할 사항을 권고하는 ‘특정성별영향분석평가’를 2012년부터 해오고 있다. 여가부는 지난해 ‘특정성별영향분석평가’를 토대로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 등 9개 부처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고, 해당 부처가 관련 제도·정책을 개선하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예컨대 금융위는 여가부 권고에 따라 ‘여성의 외모 흉터가 사회적으로 더 손해’라는 차별적 인식에 터잡은 화보법 시행령을 조만간 고쳐 내년 상반기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주거약자(65살 이상 노인, 장애인 등)한테 공급하는 공공매입 임대주택 임차인 자격을 지금의 ‘무주택 세대주’에서 ‘무주택 세대 구성원’으로 바꾸라는 권고를 받아들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세대주는 대부분 남성이라 여성 배우자는 신청할 수 없었다. 자격 요건을 바꾸면 여성들의 이용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될 시행령은 올해 12월부터 시행된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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