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일간의 이라크 평화운동 책으로 펴낸 윤정은씨
한 소년이 무덤 위로 물을 붓고 있었다. 사막의 모래바람에 무덤 흙이 무너져내리는 걸 막으려는 소년의 곁에서, 그는 자신의 발걸음 소리를 죽이려고 애썼다. 자신은 ‘기록자’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평화운동가이자 언론인인 윤정은씨(32). 그가 비로소 돌아왔다. 윤씨는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106일 동안 이라크 분쟁지역에 머물면서 평화운동가로서 사상자의 이야기 등을 기록하는 한편, 기자로 <프레시안> 등의 매체에 기사와 사진을 발표했다. 지난해 돌아왔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서서히 현실 감각을 되찾아가며 그는 글을 썼다. 이라크 전쟁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슬픔은 흘러야 한다>(즐거운 상상)라는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기록자의 임무에 충실하려고 했어요.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다만 역사적 소명과 용기가 필요했는데, 개인으로서 무기력하게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는 9·11테러에 이어 일어난 이라크 전쟁이 끝난 지 1년 뒤 현지에 들어갔다. “전쟁보다는 전쟁 뒤의 생활을 훑으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때를 맞춘 것처럼 그가 도착한 지 보름쯤 지난 뒤, 다시 ‘전쟁’이 터졌다. 팔루자에서 미국 경호원 4명이 사살당해 사체를 훼손한 사건이 일어났고, 미군이 팔루자를 봉쇄한 채 보복공격을 시작했다. 작전공격명은 ‘단호한 결의’. 5일간 4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천여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거리에서 그에게 물을 팔던 아이가 폭탄에, 주검을 거두던 성직자는 미군 저격수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가 만났던 한 여성은 전쟁의 충격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눈에 유독 크게 들어온 건 아이와 여성들. “전쟁터에서 아이와 여성들은 언제나 이중의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정씨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헤매던 여성들은 납치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족의 명예를 더럽힌다’는 이유로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고 했다. 남편 없는 여성들에게 집안의 먼 친척 남자들이 와서 횡포를 부린다는 얘기도 들었다. 미군의 포로수용소에 끌려갔다가 고문을 받은 여성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조차 없었다. 그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로 썼다.
“제 보도가 편향적이란 지적이 있었어요. 부인하지 않아요. 다만 사람들에게 전쟁 뉴스의 이면을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누가 이기고 지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분쟁으로 권력의 폭력성에 약자들이 어떻게 노출돼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가 돌아오자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미국인 신디 시핸은 전쟁을 멈추라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는 신디의 모습에서, 전쟁터에 가려는 아들을 붙잡는 이라크인 어머니의 눈 속에서 슬픔을 읽었다. 그리고 말한다. “가족을 잃고 고통당하는 이라크뿐 아니라 이라크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대한민국에도 그 슬픔이 흐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대한민국에도 슬픔이 흐르길” 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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