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평화운동가 - 마르고 오카자와 레이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전 세계여성 1000인을 추천한 ‘노벨평화상 1000인 여성추천위원회’의 미국-동아시아 위원으로 활동한 미국 여성·평화운동가 마르고 오카자와 레이(56)가 학술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지난 2003년 5월부터 ‘우머누버스’(여성행동, womamaneuver)라는 단체 이름으로 미국과 동아시아지역 노벨평화상 여성 후보들을 모았다. 한국에서도 이현숙 적십자사 부총재 등 7명의 이름이 그의 손을 거쳐 후보에 올랐다.
지난 8일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되면서 이들이 탈락됐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는 낙담하지 않았다. “성공 여부를 떠나 여성의 힘으로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는 게 중요하다”며 “비단 노벨 평화상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평화적 삶과 노력을 알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평화를 만드는 일은 비단 한두 사람의 몫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특히 “집안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몫을 담당한 여성의 매일매일 행위 자체가 평화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번에 비록 이들이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했지만 우머누버스는 수상자들의 사진과 경력 등을 적은 책을 발간하고 사진전 등의 행사를 각국을 돌면서 열기로 했다.
그는 학자다. ‘본업’은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이론체계를 세우는 일이다. 지난 11년 동안 미국 밀스 대학 등에서 여성 흑인-일본인 혼혈이란 정체성을 바탕으로 여성과 군사주의에 대해 연구해왔다. 지난해말부터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한 여성 엔지오의 초청을 받아 분쟁과 여성주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요즘 가장 큰 어려움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를 가로지르는 ‘벽’이다.
“이스라엘이 거대한 벽을 세워 분리정책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억압하는 한편, 여행과 일상적인 업무까지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동을 제한하는 분리정책 자체가 억압의 가장 지독한 사례가 될 수 있지요.”
비단 이스라엘의 장벽뿐만 아니라 ‘벽’은 그의 인생을 통틀어 오랜 숙제와도 같았다. 하버드 박사학위 수여식날,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가던중, “니그로!”(흑인을 비하해 부르는 말)라고 부른 한 백인의 말을 듣고 “평생 차별에 맞서 싸울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지난 9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난한 한국인 여성들과 가난한 미군 남성들이 만나 다시 가난한 혼혈아를 낳는 걸 보면서 평화와 안보가 얼마나 인간을 짓누르는지를 알게 됐다”는 그는 자신의 전공인 교육사회학을 접고 여성주의와 군사주의 연구에 몰두하게 됐다.
“나는 평생 내가 누구인가 되묻고, 여성과 인류애, 인종 정체성을 고민해왔습니다. 한국에 와 비로소 제가 갈 길을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여성, 인간, 운동가로서 내 정체성을 이룬 내 혈통에 만족하고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11일 이스라엘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는 마지막으로 “언젠가 다시 한국에 와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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