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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단독] 18살 소녀는 왜 성폭행 이모부와의 ‘합의서’를 냈나

등록 2016-02-01 10:17수정 2016-02-01 22:00

피해자 두번 울리는 친족성폭력
‘너 하나만 참으면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할 수 있어.’

친족성폭력 범죄 피해자는 두 번 운다. 가까운 사람한테 성폭행당했다는 충격에 한 번, ‘가족 해체’를 우려해 등 돌린 가족들 때문에 또 한 번 운다. 용기를 내 성폭행 가해자를 신고해도, 협박에 가까운 가족들의 회유에 굴복해 합의서를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친족성폭력 피해자 가족에 대한 초기 개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모부가 성폭행을 했다. 두 달 동안 네 차례. 지난해 4월 말, 이아무개(18)양은 참다못해 이모부 오아무개(39)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넉 달 뒤, 이양은 성폭행으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인공유산(낙태)을 해야만 했다. 지난해 11월13일, 법정에 선 이모부는 “성관계는 맺었지만 강제는 아니었다”고 했다.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아 그렇게 됐다”고 변명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검사가 징역 15년 형을 구형한 뒤, 그제야 오씨는 ‘범행을 뉘우친다’는 반성문을 제출했다.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지는 고통스러운 9개월이 흐르고 마침내 선고를 앞둔 지난 28일, 이양은 어쩐 일인지 ‘이모부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5년전 조카 12살때 처음 성폭행
당시 함께 살던 외할머니·이모가
‘처벌불원서’ 쓰게 해 집유 그쳐

지난해 또다시 네차례 몹쓸 짓
임신으로 낙태까지 시켰지만
가족이 경제적 의존하고 있는 탓
이번에도 선고앞 ‘합의서’ 제출돼

법원 “합의와 무관” 징역10년 선고

이양이 성폭행 사건으로 법정에 선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5년여 전에도 오씨를 고소했다. 2010년, 오씨는 부모의 이혼 뒤 외할머니, 이모와 함께 살던 12살 이양을 성폭행했다. 오씨는 당시 이모의 남자친구였다. 외할머니와 이모는 “조용히 덮자”며 이양에게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처벌불원서’를 쓰도록 했다. 오씨는 그 덕분에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뒤, 오씨와 이모는 결혼했다. 그 무렵, 엄마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이양의 악몽도 끝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오씨의 성폭행이 다시 시작됐다. 오씨는 이양의 집에 들러 컴퓨터를 하던 이양 몸에 손을 댄 것을 시작으로, 4월 중순께까지 세 차례나 더 이양을 성폭행했다. 이양은 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아 이제는 이모부가 된 오씨를 다시 고소했다.

법무부가 집계한 ‘친족관계에 의한 성폭력 사범 접수 현황’을 보면, 2005년 190건에서 2014년 564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친족성폭력은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4촌 이내의 혈족·인척, 동거하는 8촌 이내’인 경우를 가리킨다. 가해자에겐 엄청난 사회적 지탄이 쏟아지지만, 피해자는 가해자를 신고하기까지 더한 어려움을 겪는다. 심리적·경제적으로 얽히고설킨 ‘가족’이라는 굴레 때문이다. 피해자가 어렵사리 고소를 결심해도, 재판이 종결될 때까지 가족들의 끝없는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피해자는 재판 과정을 통해 스스로 치유되는 면도 있는데 도리어 가족이 회유하고 협박해 상처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초기부터 가족들한테 가해자의 책임을 정확히 인식시켜주고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상담이나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양은 친족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이 지난한 과정을 모두 거쳤다. 이양의 엄마와 이모가 오씨와 ‘의존적’ 가족관계로 엮여 있던 탓이 크다. 오씨는 이양과 엄마가 함께 살 집을 구하는 데 금전적 지원을 해줬기 때문에 이양이 저항하거나 피해 사실을 다른 사람한테 알리지 못하리라 여겼다. 재판이 시작되고 “성관계는 맺었지만 강제는 아니었다”고 주장하던 오씨는 최대한 감형을 받으려고 노력했다. 이모는 조카를 성폭행한 남편 오씨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냈다. 선고 전날인 지난 28일 이양은 결국 법원에 ‘이모부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를 냈다. 이양의 변호인은 “이모와 엄마 때문에 이양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에 합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뒤인 지난 29일, 서울북부지법 형사13부(재판장 이효두)는 오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또 12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10년간 신상정보 공개를 명령했다. 이효두 재판장은 “피해자는 생존과 생계 자체가 막막해 어쩔 수 없이 합의를 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한 걸로 보인다”며 “합의한 사실이 피고인한테 특별히 유리하게 작용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미경 소장은 “그동안 재판부가 합의서를 내면 참작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며 “재판부의 흔들림 없는 판결이 앞으로 다른 (친족성폭력) 합의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수지 황금비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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