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에선 성평등 광고 큰 호응
페미니즘+애드버타이징 신조어도
쉬노즈미디어, 5개 부문 시상
‘대드버타이징’ 등 세부항목 분화
속성상 기업 이윤 추구 위한 것
기업의 전략적 마케팅으로 봐야
국내서도 ‘여혐’ 콘텐츠 퇴출 시작
상업화 이미지 되레 강화할 수도
리우올림픽에서 태권도 여성 49㎏ 부문 금메달을 딴 김소희 선수. 올해 1월부터 시작된 위스퍼의 ‘여자답게’ 광고는 여성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위스퍼 제공
[토요판] 뉴스분석 왜?
펨버타이징
▶ 광고는 변화하는 사회상을 빠르게 반영하곤 한다. 페미니즘이 시민들 입에 그 어느 때보다 자주 오르는 요즘이다. 국외에서는 이런 시류를 접목해 기업들이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는 광고에 페미니즘을 앞다퉈 입히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도 성차별·여성혐오 표현이 담긴 광고가 주를 이룬다. 광고와 페미니즘의 만남, 펨버타이징의 세계를 살펴봤다.
지난 18일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태권도 국가대표 김소희 선수. 그가 운동선수로 살아오며 숱하게 들어온 말들이 있다. “여잔데 무슨 태권도야.” “여자니까 행동 조심하고 다녀라.” 그런 말에 굴하지 않았던 김소희 선수는 즐겁고 재미있어서 태권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화면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을 맺는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제 인생이 제가 생각하고 있는 여자다움인 것 같아요.” 공익광고가 아니다. 생리대 브랜드 위스퍼가 올해 초부터 펼쳐온 ‘#여자답게’ 캠페인의 일환으로 지난달 선보인 광고다.
전구 갈 때는 아빠, 컴퓨터 살 때는 오빠가 필요하단다.(금호타이어 타이어프로) 조깅을 하는 여성 모델을 향해 쏟아지는 남성들의 눈길과 대화들. “야 떴다 떴다. 3시 방향 그린 그린.” “히야, 저 뒷모습. 그림이다 그림.”(엘레쎄) 성차별 편견의 벽을 견고하게 다지는 숱한 말들이 전파를 타고 널리 퍼진다. 미디어는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대화를 여과 없이 내보낸다. 이런 광고는 아주 흔하다. 여성 소비자들로부터 ‘여성혐오’ 광고로 질타를 받고 방영이나 게시가 중단된 경우도 많다.
펨버타이징 시상식도 열려
광고는 사회상의 변화를 한발 빠르게 감지하고 반영하곤 한다. 1994년. 여성의 사회진출 독려, 여권 신장 등의 변화가 있던 때 여성복 광고 카피가 눈길을 끌었다. “프로는 강하고, 프로는 멋있고, 프로는 아름답다.” 일하는 여성의 모습이 ‘아름다움’으로 수렴하지 않고 ‘멋있고, 강한’ 이미지로 확장하는 순간이었다. 때는 페미니즘 물결이 거세지고 있는 2016년이다. 그러나 방송, 인쇄, 디지털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되는 광고는 페미니즘 물결에 아랑곳 않는다. 위스퍼의 ‘#여자답게’ 캠페인 광고 정도가 성차별 표현을 대표하는 ‘여자다움’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도록 독려할 뿐이다. 이마저도 미국의 올웨이즈(위스퍼의 국외 브랜드명)가 2014년부터 펼쳐온 캠페인을 국내에 들여온 것이다. 국내 광고에서 그 밖의 예시를 찾기란 어렵다.
국외에서는 성차별에 반대하고 성평등을 주제로 삼은 광고들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014년께부터는 페미니즘과 애드버타이징(광고)의 합성어 ‘펨버타이징’이라는 신조어가 마케팅과 광고계에 등장했다. 펨버타이징 광고를 대상으로 한 시상식도 생겨날 정도다. 미국의 쉬노즈미디어(SheKnows Media)는 2015년부터 펨버타이징 어워즈(▶femvertisingawards.com)를 주관하고 있다. 올해도 5개 부문 15개의 후보작 가운데 시민 투표와 심사위원 평가를 거쳐 최종 수상작이 가려진다. 5개 부문 가운데 하나는 ‘대드버타이징’(Dadvertising)으로, 성평등 시대에 새로운 아버지상을 담은 광고들이 후보로 뽑혔다. 대드버타이징과 같은 하위항목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펨버타이징은 양적·질적으로 빠르게 도약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펨버타이징은 하나의 마케팅 도구이다. 여성을 ‘위해’ 펼치는 이타적인 캠페인이 아니다. 기업의 목적인 이윤 추구를 위한 행위인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펨버타이징이 소비자들에게 먹힐 뿐 아니라 기업의 이윤 추구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뿌리내리고 있다. 마케팅 콘텐츠 생산자와 기업을 이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콘텐타의 류정화 대표는 “외국의 여러 브랜드들은 특정한 주제나 가치를 놓고 핵심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견고한 커뮤니티를 형성해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위스퍼를 생산하는) 피앤지(P&G)는 여성의 권리 신장이나 성차별 반대 등을 중심에 놓고 미디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략적으로 이렇게 맺은 소비자와의 관계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심해서 광고 등에 적용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별한 것’ 아닌 ‘당연한 것’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국외에서는 상식에 가깝다고 인식하는 페미니즘을 기업 활동에 접목하는 것을 주저하는 사이, 소비자들의 페미니즘 지지, 여성혐오 반대 움직임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 한국에 들어온 지) 2년 반의 시간이 흘렀는데, 그 사이에 페미니즘이나 소수자 인권 존중 등 면에서 시민의 인식이 많이 개선된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김 소장은 “특히 청년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페미니즘, 여성혐오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면 그 뒤로 인식과 행동 면에서 많은 변화를 보이곤 한다. 또한 관련 교육을 진행해달라는 요구도 곳곳에서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영국의 청년·청소년 관련 시장조사 업체인 유스사이트가 실시한 설문 결과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스사이트는 지난해 9월 16~24살 영국 청소년·청년 1000명에게 페미니즘과 광고 등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적으로 광고가 성적 매력을 너무 부각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65%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 ‘광고는 최대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쓰여야 하고, 현실적인 신체 이미지를 그려낼 책임은 없다’에 대해 여성 응답자 가운데 64%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페미니즘이 중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응답 비율은 72%에 달했다. 이 의견에 동의하는 여성 응답자는 82%에 이른다. 영국의 실정이긴 하나 소비자, 특히 여성 소비자에게 페미니즘이 ‘특별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소비자들도 ‘여성혐오’ 콘텐츠에 대한 강력한 반대와 비판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한 색조화장 브랜드는 지난 3월 여성비하 발언을 한 적 있는 남성 개그맨을 광고모델로 기용해 소비자들의 질타를 받고, 해당 광고 게재를 중단한 적이 있다. 이 밖에도 ‘돈을 내는 사람은 결국 남성’ ‘명품 가방이면 되는 여성’ ‘남성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으로 묘사된 여성’과 같은 내용이 담긴 광고들이 소비자의 항의로 사라졌다.
자본 종속 삶 심화시킬 수도
여성 소비자의 구매력과 경제력을 영원히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점도 기업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광고주인 기업과 광고제작자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 개선은 더 이상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영역이 아니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광고 속 여성혐오 등의 문제는 의사결정구조에서 그 문제가 시작된다고 본다. 결국 광고 문구는 광고주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여성혐오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거나,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아 이런 일(여성혐오 광고)들이 반복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의사결정권자의 인식 개선과 그 바탕에서 만들어지는 광고를 보면 소비자들의 지지를 얻고 브랜드 이미지에 기여하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류정화 콘텐타 대표도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때 기업과 브랜드들이 이제까지와 다른 고민을 시작할 것이다. 주된 소비자가 여성이라면 여성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가 아니라 여성의 삶을 격려하고, 여성의 권리를 독려하는 콘텐츠들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이 상업주의의 최전선인 광고와 결합하는 대목에서 경계할 것이 분명 있다. 펨버타이징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면서도 기존의 미적 기준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나아가 상업화한 이미지가 자본과 소비에 종속된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흐리게 할 여지도 있다. 이에 대해 김예란 광운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이제 더 이상 성적 대상화한 여성의 이미지가 호응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을 잘 알고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선보인다”며 “이런 광고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평범한 여성들도 자기관리를 잘하면서도 능력 있는 여성이 되길 촉구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광고는 일상을 촘촘하게 유도한다. 일종의 교과서가 되곤 한다. 페미니즘 요소를 담은 상업광고는 신자유주의와 결합해 능력 있는 소비자이자 노동자의 모습을 구축한다”고 덧붙였다.
이정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xingxing@hani.co.kr
남성들이 달리는 여성의 몸을 대상화해 평가하는 모습을 담아 여성 소비자들로부터 비판을 산 스포츠의류 엘레쎄 광고. 유튜브 화면 갈무리
태권도 국가대표로 리우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김소희 선수. ‘여자답게’의 편견을 깨고 운동선수의 길을 걷는 김 선수의 모습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