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한 여성만 정조 보호 ‘여성 차별’
성폭력 피해 대상서 제외 ‘남성 차별’
성폭력 피해 대상서 제외 ‘남성 차별’
우리나라 헌법과 법령에 남녀차별 조항이 상당 부분 남아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한국여성개발원에 의뢰해 국내법령집 일부(헌법 제1편에서 문화·공보 제17편까지)를 조사한 결과 성차별적인 법 규정이 159개에 이른다고 11일 밝혔다.
대표적인 여성 차별조항으로 꼽힌 것은 순결한 여성의 정조만 법률상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한 형법 규정이다. 형법 제 242조(음행매개)와 제304조(혼인빙자 등에 의한 간음)에서 ‘음행의 상습이 없는 부녀’만을 보호하도록 한 조항은 순결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전근대적 차별 규정이라는 설명이다.
유족이 재혼하면 연금 수급 자격을 박탈당하는 규정도 간접차별로 조사됐다. 현재 공무원연금법 제59조(유족연금의 수습권 상실)는 여성이 대부분인 유족연금 수혜자가 재혼할 때 연금 수급 권리를 상실한다고 규정해, 혼인의 자유를 사실상 제한하는 차별로 지적됐다. 우리나라에 비해 프랑스는 지급 중단 규정이 없고, 오스트리아, 핀란드, 이탈리아, 독일 등은 2~3년씩 유예 기간을 보장하고 있다. 또 △합리적인 이유 없이 약혼·혼인 가능 연령을 남18살, 여16살로 한 민법 규정 △임신·출산 기간을 고려하지 않은 공무원규칙·규정 △육아휴직기간을 일반휴직처럼 취급한 지방공무원법과 군인연금법 등이 남녀차별규정으로 꼽혔다.
이번 조사에는 남성이 받는 성차별 조항까지 포함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형법 제297조(강간)는 피해자를 여성으로 한정해 남성에 대한 성차별로 분류됐다. 지금까지 남성 성폭력은 강간죄가 아닌 강제추행죄에 의해 처벌을 받아왔다. 지난 2004년 사병 15.4%가 성폭력 피해를 받았다고 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처럼 남성이 남성에게 가하는 성폭력 등도 군대, 교도소 등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심각한 성폭력 범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용역을 맡은 한국여성개발원의 박선영 연구원은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외국에서는 강간죄의 객체를 중성화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흉터가 남은 사람의 신체장애 등급을 규정한 국가배상법 시행령 등도 남성에게 불리하게 규정돼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그밖에 호주제를 폐지한 개정 민법의 취지에 맞게 고쳐야 할 법령도 다수 발견됐다. △유족의 수급권 순위를 호주승계인인 손자녀가 우선하고 있는 독립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 △가족 범위에서 출가한 딸과 모계혈족을 제외시킨 공직자윤리법시행규칙 △수급권자의 범위에서 여성을 불리하게 한 국가유공자등예우및지원에관한법률 등이 이들이다.
여성가족부는 올해 안으로 남녀차별규정 발굴·정리를 마치고 전문가, 관계부처, 시민단체 등의 의견 수렴과 선별 과정을 거쳐 관계 법령 정비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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