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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클로드, 웨이터에서 신화로

등록 2007-05-30 23:25

앞만 보고 나아간 웨이터 존 클로드는 10년 안에 뉴욕에 레스토랑을 열겠다는 꿈을 이루고 말았다. 뉴욕의 거리 풍경.
앞만 보고 나아간 웨이터 존 클로드는 10년 안에 뉴욕에 레스토랑을 열겠다는 꿈을 이루고 말았다. 뉴욕의 거리 풍경.
[매거진 Esc]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③
칼부림의 위기를 넘기고 5만달러짜리 성공 스토리를 일궈내다

존 클로드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학생이라 돈이 없었죠. 존 클로드가 나하고 친했으니까 친구가 오면 남은 재료로 음식을 해주고 그랬어요. 버스보이였던 미스터 리가 그 여자 친구를 집적거린 거죠. 존 클로드가 갑자기 식탁에 있던 빵칼을 집어들더니 휘두르기 시작했어요. 미스터 리가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지만 그 와중에 목하고 팔꿈치를 베였어요. 피가 뚝뚝 떨어졌고, 누가 불렀는지 경찰이 도착했어요. 경찰은 사정을 모르니까 누가 싸움을 시작했는지 물어봤죠. 주방에 다섯 명이 있었거든요. 주방장은 없었고, 내가 있었고, 내 도우미인 러시아 사람이 있었고, 멕시코 보조가 있었고, 그리고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두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얘길 안 하는 거예요. 미스터 리를 싫어하고 있었으니 입을 꽉 다문 거죠. 미스터 리가 제 얼굴을 보더니 이렇게 얘길 했어요.

“스스무, 너 다 봤잖아? 존 클로드가 칼을 휘두른 걸 봤잖아. 너도 같은 아시아 사람인데 얘길 해줘!”

“스스무, 10년만 기다려봐!”

나도 얘길 안 했어요. 주방에선 그런 게 불문율이에요. 주방에서 있었던 일엔 절대 다른 사람이 끼어들지 않아요. 주방에서 요리사 두 명이 싸움을 해도 절대 말리지 않아요. 그 뒤로 미스터 리는 2주 만에 그만뒀어요.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을 하니 화가 났겠죠.

존 클로드는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같이 일을 할 때 저한테 자주 하던 말이 있었어요.

“스스무, 난 10년 후에 내 레스토랑을 열 거야!”


안 믿었죠.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은 많아요. 그런데 존 클로드는 다른 사람하곤 달랐어요. 술을 절대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아요. 꿈을 이루려고 앞만 보고 나갔어요. 웨이터를 시작한 지 2년 뒤엔 캡틴이 됐어요. 캡틴이 된다는 건 하루 30만원씩 꾸준히 벌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고서 10년이 지났을 때 정말 전화가 걸려왔어요. 1992년쯤이었을 거예요. 그때는 제가 요리사 일을 잠깐 쉬고 도자기를 굽고 있을 때였는데, 저한테 전화를 해서는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존 클로드의 아버지가 프랑스 사람이었고 어머니가 이탈리아 사람이었는데, 어머니 음식이 너무 그리웠나봐요. 난 이탈리아 음식을 모른다고 했죠.

“어머니 고향에 가서 잘하는 요리사 한 명을 데리고 와!”

그렇게 충고를 해줬죠. 하지만 돈이 넉넉지 않대요. 이탈리아 주방장을 데리고 오려면 비행기삯에 체재비에 비자도 해결해줘야 하니 돈이 많이 들긴 하죠. “그러면 일단 작게 시작해라, 네가 일하면서 알게 된 부주방장급 요리사 한 명과 시작해라!” 그랬어요. 존 클로드는 딱 5천만원으로 시작했어요. 정말 작은 식당이었어요. 직접 페인트칠을 했고, 식당 안에 장식도 하나 없어요. 예약도 받지 않았고 신용카드도 안 돼요. 현금만 받았죠. 그런데 이 집이 엄청나게 성공을 거둔 거예요.

식당 이름이 ‘존 클로드’였어요. 이탈리아 음식이 아니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어요. 존 클로드의 가장 큰 장점 하나가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한다는 거였죠. 그동안 쌓은 인맥과 사람을 잘 사귀는 재능이 빛을 발한 거예요. 물론 음식도 맛있었지만 …. 문을 연 직후에 저도 가 봤는데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그랬죠. “딱 석 달만 있어보라”고. 그런데 석 달이 되기 전에 성공했어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니 <뉴욕타임스> 사람들도 음식을 먹으러 왔죠. 평가가 괜찮았고, 계속 성공할 수 있었어요. 1년 뒤에는 식당을 하나 더 열고, 또 1년 뒤에는 건물을 하나 샀어요. 그 건물에다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열었죠. 저한테 다시 연락이 왔어요. 다른 곳에서 돈을 벌고 있으니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는 정말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팔고 싶다는 거였어요.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주던 리조토 같은 걸 팔고 싶었던 거죠. 요리사 몇 명을 소개시켜 줬어요. 지금 존 클로드는 유명해졌죠. 뉴욕에서 존 클로드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결혼 뒤 진짜 사랑에 빠지다

어느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존 클로드를 만난 적이 있어요. 다짜고짜 저한테 이런 말을 해요. “아내하고 이혼해야겠다”고. 내가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어줬던 그 여자 친구하고 결혼을 했거든요. 나는 깜짝 놀랐어요. 어려운 시절을 함께 지냈던 걸 알고 있으니까요. 내가 그 얘길 듣고 무슨 생각을 했냐면 ‘그렇게 여자를 힘들게 하더니 결국 이렇게 끝내냐?’였어요. 결혼을 해서 아내와 함께 살 때도 존 클로드는 지독했어요. 아내 이름이 마리사였죠. 마리사는 학교에서 사진을 배우고 있었는데, 존 클로드와 집세를 반씩 내야 했어요.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각자 집값을 해결하자는 거였죠. 존 클로드는 그때 돈을 잘 벌고 있었거든요. 마리사는 나를 만나면 그런 얘길 했어요. “스스무, 난 너무 피곤해. 학교에서 수업도 들어야 하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힘들어!”

아내에게 그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었죠. 존 클로드에게 그런 얘길 넌지시 하면 “스스무, 네가 이 여자랑 결혼했니? 그런 얘긴 하지 마라!”면서 화를 내요. 그런 과정을 봐 왔으니 이혼한다는 얘기가 이상하게 들리죠. 존 클로드에게 물었어요. 도대체 왜 이혼할 생각을 하냐고. 존 클로드가 대답했어요.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난 그린카드 때문에 마리사와 결혼했어. 그때는 사랑이고 뭐고 목적이 하나밖에 없었지. 그런데 이제야 마리사와 사랑에 빠졌어. 이혼하고 다시 한번 청혼해서 결혼하고 싶어!”

얼마 후에 결혼한다고 전화가 왔어요. 저는 다른 일 때문에 가진 못했죠. 존 클로드가 마리사에게 계속 일을 시킨 것은 자립심을 기르려는 거였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죠. 웨이터로 시작해서 식당의 주인이 된 사람은 뉴욕에서 흔치 않아요. 존 클로드 덕분에 뉴욕에 작은 식당 붐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전에는 식당 열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존 클로드가 5천만원으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냈으니 너도나도 시작한 거죠. 대부분 실패했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존 클로드니까 할 수 있는 일이었죠.

정리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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