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요리사들과는 절대 놀지 않았어요”

등록 2007-06-13 16:42수정 2007-06-13 17:49

스스무를 영국으로 이끈 비틀스.
스스무를 영국으로 이끈 비틀스.
[매거진 Esc]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비틀스를 만날 줄 알고 찾아간 영국,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

영국 하이드파크 근처의 호텔에 가서 설거지를 하면서 요리를 배웠지만 요리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설거지 해서 번 돈으로 유럽여행을 할 생각이었거든요. 잠은 하이드파크에서 해결했어요. 슬리핑백에 들어가 잠을 잤죠. 원래 설거지 일은 저녁에만 하는 거였는데, 나는 아침부터 식당에 나가 설거지를 했어요. 그것말고는 할일이 없었거든요. 아침부터 일한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열심히 했어요. 두 달이 지났을 때 샐러드 담당 요리사가 그만뒀어요. 부주방장이 제게 와서는 “야, 스스무, 샐러드 담당 해볼래?” 했어요.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설거지 하는 것보다는 돈을 더 받을 수 있으니까 당연히 했죠. 다시 1개월이 지났고, 비자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호텔 주인의 부인에게 인사를 하러 갔는데, 거기서 새로운 제의를 받았죠.

설거지 담당에서 요리사로

“스스무, 당신이 마음에 든다. 계속 이곳에 있고 싶다면 우리가 도와주겠다. 워킹비자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설거지 담당으로는 비자를 신청할 수 없으니까 요리사를 시켜주겠다.”

이틀 후에는 호텔 안의 방도 하나 내줬어요. 거기서 몇 달 일하고 있으니 주방장이 다른 곳으로 가서 일을 더 배워보래요. 그래서 간 곳이 사보이 호텔이었어요. 영국 최고의 호텔이에요. 그때가 1973년이었죠. 나는 시키는 대로 무조건 다 했어요. 사보이호텔에서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설거지였어요. 처음부터 설거지를 열심히 했으니 그것만큼은 누구보다 잘했죠. 설거지를 하면서 조금씩 일을 배워나가면서 직급이 올라갔어요. 석 달마다 월급도 늘었어요. 그다음에 간 곳이 그로스버너 하우스 호텔이었어요. 이 호텔은 규모가 어마어마해요. 요리사만 100명이 넘고 1000명 정도 손님을 맞을 때도 있어요. 1년에 한 번 영국 여왕을 모시는 행사를 거기서 열어요. 퀸즈룸이라는 방이 따로 있는데, 그 방은 1년에 한 번만 문을 여는 거예요. 그로스버너 하우스 호텔에서 일하고 나서야 ‘이제 나도 요리사가 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영국에서 일할 때도 요리사들과는 절대 놀지 않았어요. 주로 음악가들과 어울렸어요. 내가 영국으로 간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철없는 생각인데, 영국에 가면 비틀스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오키나와에서 학교를 다닐 때 영국의 밴드들에 미쳐서 지냈어요. 비틀스, 롤링스톤스, 애니멀스 같은 그룹의 음악을 들으면서 살았어요. 기타를 배우기도 했는데, 나는 음악에는 재능이 없나봐요. 잘 안 되더라고요.


참 희한한 것은 영국에 가서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그 여자친구의 친구들이 모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비틀스는 만나지 못했지만 재미있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록시뮤직’이라는 유명한 그룹이 있는데, 거기에서 색소폰을 불던 앤디 매케이가 저의 친구였어요. 표 얻어서 공연도 보러다니고, 매일밤 파티를 열고 술을 마셨어요. 식당 일이 끝나면 친구들을 만나서 밤새도록 놀았죠. 아주 가끔 요리사들과 어울릴 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근처의 펍에 가서 가볍게 맥주 마시는 게 끝이었어요.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제일 슬픈 날, 1980년 12월8일

비틀스 얘기 하니까 존 레넌 숨지던 날이 생각나요. 그때 나는 뉴욕의 식당에서 일하다가 페루로 여행을 갔어요. 페루의 리마였나? 다른 도시였나? 안데스 중턱 지역이었는데, 돈을 바꾸러 은행으로 걸어가고 있었어요. 그때 가판대에서 신문을 봤는데 존 레넌의 얼굴이 커다랗게 나온 거예요. 그때는 스페인어를 전혀 몰랐기에,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은행으로 들어갔더니 외국 사람이 많이 있어서 물어봤죠. 존 레넌이 죽었다는 거예요. 전부 충격을 받아서 멍하니 서 있더라고요. 그때가 1980년 12월 8일이었어요. 내 인생에서 제일 슬픈 날이에요. 그 다음날이 내 생일이었어요. 한 시대가 다른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정리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