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뉴욕타임스〉가 찾아온 뒤…

등록 2007-06-27 16:19수정 2007-06-27 17:40

〈뉴욕타임스〉는 고르고 골라 1년에 52개의 식당을 리뷰한다.사진/ 박미향 기자
〈뉴욕타임스〉는 고르고 골라 1년에 52개의 식당을 리뷰한다.사진/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⑦
한 명의 음식평론가가 식당의 존폐를 좌우하는 것에 관하여

한 명의 평론가가 식당의 존폐를 좌우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뉴욕타임스>의 음식평론가가 정말 정확할까요? 그런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음식평론가가 되는 경우는 두 가지예요. 정치부 기자를 오래 하면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면 많은 나라의 음식을 먹어 볼 기회가 있어요. 음식평론가 중에 정치부 기자가 많아요. 그리고 또 다른 길은 요리사의 꿈을 가지고 음식을 공부하다 평론가가 되는 거예요. 음식 평론을 하려면 우선 요리전문가여야 해요. 그리고 새로운 눈으로 음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요리의 역사도 공부해야 하고 수많은 나라의 문화와 음식을 알아야 해요. 그 많은 걸 알아야 평론가가 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자격이 있지 않아요?

한국에선 전부 맛있기만 하대요

한국에는 평론가가 한 명도 없어요. 음식 관련 잡지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전부 맛있대요. 한 번도 ‘어떤 식당이 맛이 없다’라는 글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가 보면 맛이 엉망이에요. 말도 안 되는 요리예요. 인터넷 가 봐도 마찬가지야. 요리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이 전부 평가를 내려요. 나도 요리에 대한 글을 쓰고 있지만 평론가 아니에요. 평론가 쉽게 되는 게 아니에요. 그렇다면 수많은 요리를 경험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쌓은 단 한 명의 평론가와 음식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백 명 중에 누가 나을까요? 숫자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운영했던 ‘이트앤드링크’(Eat & Drink)도 <뉴욕타임스>에 실린 적이 있어요. 문을 열고 나서 평론가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식당에서 일했는지, 어떤 요리를 하는지 적어서 편지를 보냈어요. 올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요. <뉴욕타임스>에 실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뉴욕타임스>는 1년에 52개의 식당을 리뷰해요. 그런데 그중에서 26주는 새로운 식당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예전에 평가했던 식당을 다시 가 보는 거예요. 26개의 기회 중에서 하나를 잡아야 하는데, 뉴욕에 새로 생기는 식당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쉽지 않아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신문에 난 거예요. 언제 왔다 갔는지는 알 길이 없어요. 평가는 꽤 괜찮았어요. 문제는 그 다음부터 생겼어요. 매주 수요일자에 식당 리뷰가 실려요. 신문에 나기 전에는 하루 예약이 열다섯 명 정도였는데, 목요일에 갑자기 90명이 들이닥친 거예요. 재료가 없어요. 음식을 만들고 싶어도 불가능해요. 8시에 모든 재료가 다 떨어졌어요. 금요일 예약은 120명이었어요. 토요일은? 200명이었어요. 그런 상태가 6개월 동안 지속돼요. 그때 평론가가 루스 레이셜(Ruth Reichl)이었어요. 지금은 잡지 <구어메>(Gourmet)의 편집장이죠. 한 사람과 한 신문이 그만큼 큰 영향을 끼치는 거예요.

나는 <뉴욕타임스>를 보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글 쓰는 법도 거기서 배웠어요. 문학 같은 걸 공부해 본 적도 없으니까요. 매주 읽어요. 매주 식당 리뷰를 읽으면 곧바로 그 식당으로 찾아가 봐요. 아마 내 월급의 반 이상은 식당에 투자했을 거예요. 가서 먹어 보고 비교해 봐요. ‘아, 이런 맛을 이렇게 표현했구나!’ 뉴욕에 있는 식당을 모두 돌아다니면서 확인해 볼 수는 없잖아요. 평론가가 그 일을 대신 해주는 거예요.

혀의 전성기는 30대 중반

<뉴욕타임스>를 읽을 때마다 꼭 보는 칼럼이 하나 더 있어요. 내가 미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로버트 스미스라는 평론가의 글은 꼭 읽어요. 글을 읽고 전시를 보러 가요. 전시를 볼 때마다 놀라요. 내가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어요. 더 깊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평론이라는 것은 새로운 생각을 던져 줘야 해요. 그리고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줘야 해요. 미미 셰러턴과 루스 레이셜도 내게 그런 존재였어요.


스스무 요나구니
스스무 요나구니
한때는 나도 내 혀를 믿었던 적이 있어요. 혀의 전성기는 30대 중반인 거 같아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까지는 세상의 모든 맛을 가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세계 최고의 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음식을 맛보면 어떤 재료를 썼는지, 부족한 게 뭔지 다 알아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감각이 떨어져요.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주방장이 왜 부주방장을 쓰는지 알아요? 그리고 왜 100% 믿는 줄 알아요? 부주방장의 혀가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주방장에게는 경험이 있어요. 하지만 혀의 감각은 점점 둔화되죠. 부주방장에겐 뛰어난 혀가 있어요. 하지만 경험은 모자라죠. 주방장은 부주방장의 혀를 빌리는 대신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기억들을 가르치는 거예요.

정리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