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 기술연구소의 연구실.
[매거진 Esc]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국세청 기술연구소가 전통술산업육성지원센터를 개소했다는데…
서울의 유명한 술이 삼해주(三亥酒)다. 세 번의 돼지날(亥日)에 나눠 빚는다는 술로,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네 가지 술 중에서 두 자리를 차지한다. 권희자 씨가 빚는 약주 삼해주, 이동복 씨가 빚는 소주 삼해주가 그것이다. 삼해주를 많이 빚었던 동네로는 마포 아현동이 알려져 있다. 마포나루가 가까운 아현동은 수량이 풍부하여 연중 물이 마를 염려가 없던 동네로, 거의 집집마다 소주를 빚었다. 아현동이 술동네가 된 게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1909년의 상황은 그러했다.
국내 술 관리의 절대지존
아현동의 이런 조건을 보고 들어선 정부 기관이 있다. 대한제국 탁지부 소속의 양조(釀造)시험소다. 1909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주세법이 만들어지던 해에, 술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고자 일본인 관료의 기획으로 생겨난 기관이다. 99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 양조시험소는 그 옛날 터 잡은 그곳에 그 규모로 하던 일 그대로 하면서 유지되고 있다. 가히 문화재급 행정기관이다. 그 위치는 마포경찰서 바로 뒤편인데, 기관의 이름은 바뀌어 국세청기술연구소다.
국세청기술연구소라는 이름만으로는 국세 징수에 관련된 기술적인 업무를 연구하는 기관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연구소의 주요 업무는 술의 면허, 분석, 평가, 관리감독을 하는 일이다. 전체 직원 32명 중에서 22명이 술에 관한 업무를 보고 있는, 술 제조에 관련된 최고의 국가기관이다. 양조장 사람들이 보자면, 이 기관에 소속된 사람들은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쥐고 있는 절대 지존들이다.
이 연구소에서 지난 6월5일에 조촐한 행사가 있었다. 전통술산업육성지원센터 개소식이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전통 술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니, 반가운 마음에 센터를 찾아가 보았다.
전통술산업육성지원센터 현판이, 국세청기술연구소 현관 기둥에 걸려 있었다. 센터장은 연구소 소장인 권상일씨가 겸했다. 센터 연구원은 연구소 직원들이 겸했다. 건물을 따로 지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센터장에게 물었다. 센터를 위해 따로 마련한 예산과 조직이 있습니까? 국세청 본청에 17억원과 전담 연구원 12명을 요청한 상태지만,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고 했다.
국세청이 알뜰한 건 좋은 일이다. 국세청이 돈을 걷는다지만, 함부로 쓰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센터를 출범시키면서 내세운 “국세청이 전통 술 육성에 발벗고 나서다”라는 보도자료 문구가 왜소해지는 듯하다. 진도 홍주 명품화 사업에 3년 동안 95억원, 소곡주를 중심으로 한 문화역사 마을 가꾸기 사업에 34억원이 지원되는 실정이다. 그리고 농촌진흥청에서는 17억원을 들여 농민주 활성화를 위해 350평 규모의 양조식품 연구동을 지어서 지난 6월12일에 개소식을 했다. 국세청기술연구소가 술 관리에 관해서는 절대 지존이라지만, 호령 한마디로 전통 술이 육성되는 것은 아닐 텐데, 아껴도 너무 아낀다는 느낌이다. 한 해 거둬들이는 주세(2005년 국내 생산 주류에서 징수된 세금 2조3521억원)의 1천분의 1을 쓴다면, 형편은 사뭇 달라질 텐데 말이다. 그래서 지원센터부터 지원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조업자가 되고 싶으세요?
센터에서 수행하게 될 업무 중에서 눈에 띄는 게 세 가지 있다. 정기적으로 주류 품평회를 개최하고, 품질인증제를 도입하고, 양조기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양조기술 교육은 양조업자뿐 아니라, 전통 술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해서 일반인도 교육 대상으로 한다니 파격적이다. 사실 우리 전통 술 산업에서 인력의 재생산 구조는 무너져 있다. 대학에서 양조학을 가르치는 곳도 드물고, 양조업자가 되고자 기술을 배우려고 해도 마땅한 곳을 찾기 어렵고, 주조사(酒造師) 자격증 시험도 정기적으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인에게까지 양조 교육의 장을 넓히겠다고 하니, 센터의 야심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알코올 트래블도 좋지만, 알코올을 직접 만들어 손님을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센터의 벨(02-3149-5200)을 울려 보시라.
허시명 여행작가·술품평가

검사를 기다리는 소주들.
전통술산업육성지원센터 현판.(왼쪽) 실험 제조하고 있는 과하주.(오른쪽)

소주를 내리는 증류기.

위스키를 증류하는 시설.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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