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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도 키스도 노? 당신은 ‘지갑 달린 물증용’일뿐

등록 2007-07-18 17:47수정 2007-07-19 14:17

“내 희생만 강요하는 여친…”
“내 희생만 강요하는 여친…”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불량 재무제표·자본 잠식 이미 심히 억울한 지경
행복할 공산 희박…결혼한다면 복종 아니면 복수
Q

나이 32살입니다. 여친은 31살, 사귄 지 1년4개월입니다. 결혼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남자가 무조건 희생해야 한답니다. 명절마다 전 그녀 부모님 선물을 하는데 그녀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선물 받고 고맙다는 이야기도 한 번 없었구요. 또 데이트 하면서 여태 한 번도 지갑을 열지 않았어요. 그리고 매달 말일이면 그녀 직장 마감이라 엄청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래서 정성스럽게 도시락 싸서 출근 전에 갖다 주곤 했지요. 물론 그녀는 한 번도 도시락 싸준 적 없고 언제나 편지 한 장 없는 빈 통만 돌려줍니다. 표현은 하지 않지만 날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결혼하면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로 만나고 있죠.

사실 처음 만났을 때는 잠 못 이룰 정도로 좋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건 아니다 싶고 많이 지쳐갑니다. 정리를 하자면 1. 돈 쓰지 않는 그녀가 밉습니다(그래서 돈 쓰는 데 야박해지면 날 쫀쫀하다고 합니다). 2. 뭘 해줘도 고마워하긴커녕 늘 내가 부족하다 합니다. 3. 데이트 하다가도 집에서 연락 오면 곧장 가버립니다. 4. 항상 친구 위주이고, 귀도 너무 얇습니다(주변에서 조금만 나에 대해 안 좋게 말하면 그대로 무너집니다). 5. 엄청난 고집으로 무조건 절 이기려 합니다(언제나 제가 당합니다). 6. 스킨십을 너무 싫어합니다(1년 넘도록 키스 몇 번 못해 봤어요). 저도 얼른 행복한 가정 꾸리고 싶은데 그녀만 보면 자신이 없어집니다.

김어준 / 박미향 기자
김어준 / 박미향 기자
A

0. 본인 외조모께서 살아생전 그대 여친 같은 자를 목도하면 나지막이 읊조리시던 서정적 표현이 불현듯 떠오른다. 호강에 받쳐 요강에 똥 싸고 있다. 아아, 그대 여친에게 이 문구, 이중 골판지와 만능 청테이프로 표구해 착불 택배 해드리고픈 욕구, 용솟음치도다.

1. 먼저 당신이 연애라 믿는 그 관계의 진실, 야박하게, 밝혀보자. 각오하시라.
첫째. 당신 여친, 당신, 사랑 안 한다.
그녀가 사랑하는 건 남자로부터 칙사 대접받는단 사실 자체와 그렇게 대접받아 으쓱한 자기 자신. 당신, 아니다. 그럼 당신은 뭐냐. 그녀가 친구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숭앙받는 존재인지 입증하는 데 동원되는 지갑 달린 물증. 그녀가 돈 낸다는 건 스스로 이를 반증하는 짓. 절대, 안 하지. 그녀, 친구들에게 당신이 얼마나 많은 돈, 시간, 노력을 상납하는지 중단 없이 홍보한다. 그에 대한 친구들 탄복과 시기가 바로 당신과의 관계를 지속케 하는 핵심 동력. 친구들 한마디에 취약할 수밖에.


둘째. 대체 그럼 그녀는 지금 뭐 하고 있나. 그녀를 움직이는 건 그녀의 당신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당신의 그녀에 대한 욕망. 그녀는 당신 욕망을 미분적분해 자신의 권력 기반으로 삼는다. 당신에게 감사도 칭찬도 선물도 키스도 않는 건 혹여 당신 욕망을 충족시켜 자칫 권력 누수로 이어질까 봐. 당신이 기고만장해 당신에 대한 우월적 지위와 통제력을 상실할까 봐. 그녀 관심사는 당신이 아니라 자신을 존재 증명하는 당신에 대한 권력 유지. 그녀에게서 발견되는 사랑의 흔적이라곤 구강기 유아 수준의 자기애. 그러니 그녀가 하고 있는 건, 정치다.

셋째. 그녀는 누구냐. 불쌍한 ‘년’이지. 할리퀸 주인공 콤플렉스의 처참한 피해자이자 타인의 이목에 삶 전체를 조타당하는 홑껍데기 인생. 그녀 자존을 지켜주는 건 그녀 스스로 갖춘 것들이 아니라 남자가 자신에게 매달린다는 상황 그 자체. 자기 내부로부터 적립된 자존의 함량, 매우, 낮다. 허약한 에고는 자기 돌보기도 바쁜 법. 당신이 학수고대하는 보상, 난망하다.

2. 건강한 연애 관계의 요체는 밸런스다. 그 관계추만 균형 잡는다면, 채찍 휘두르며 에스엠(SM) 하든 말든 그거 건강한 관계다. 그리고 그 균형 가름하는 건 물리법칙, 아니다. 상대에게 99 주고 1만 가져도 스스로 손해라 감각되지 않으면, 누가 뭐라 하든, 그 연애, 내재적 형평 이룬 거다. 원래 대차대조 생략하고 미련 없이 주는 게 연애 미학의 정수다. 근데 당신은 이미 불량 재무제표와 자본 잠식이 심히 억울하다. 그걸로 말 다한 거다. 밸런스, 무너진 거다. 이게 다 그녀 탓이냐. 이 병든 관계, 귀책사유 절반은 당신 몫이다. 모든 관계는 상호 학습이며 교섭이다. 일방의 규범, 결국 수용했다면, 그 결과도 나눠 가져야 한다. 요강 두 팔로 떠받치며 팔에 쥐난다 징징거리는 그대 주둥이에 호치키스 10호 철침 세 방, 마땅하겠다.

3. 결혼한다면, 둘 중 하나다. 복종 아니면 복수. 그녀에게 불만의 복종 지속하든가, 본전 따지며 복수하든가. 행복할 공산, 희박. 최종 선택, 물론 당신 콜이다. 내게 묻는다면, 1년4개월 돈 한 푼 쓰지 않는 거까지 다 좋다. 허나 키스조차 않는 건 그녀 에고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 애정의 문제다. 가망 없다. 21살에 그러는 건 몰라서 뻗대는 거다. 그러나 31살에 그러는 건 정신착란이지 그게.

때려치워라.

PS-가장 효과적 이별. 그녀와 친구들 앞에서 친구들 칭찬하라. 그녀와 비교하며. 외모만.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 잡혀 죽는 수 있다.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는?
배우이자 뮤지컬 제작자 박해미씨와 딴지일보 총수이자 방송인 김어준씨가 독자들의 ‘관계 개선’ 상담가로 나섰습니다. 부부관계, 가족관계, 직장 내 관계, 애인 관계, 친구 관계 등 살면서 엮이게 되는 인간관계의 고민에 대해 매주 번갈아 시원하고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상담을 원하는 독자는 고민 상담메일(gomin@hani.co.kr)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100% 비밀보장, 100% 고민해결을 책임집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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