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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는 오르가슴이다

등록 2007-07-26 17:25수정 2007-07-26 17:34

디저트는 모든 음식의 맛에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한겨레
디저트는 모든 음식의 맛에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한겨레
[매거진 Esc]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⑩
섹스의 기쁨을 음식에서 느끼게 한 프랑스 요리사 로저 버지와의 만남

지금이 휴가철이죠? 요리사들은 거의 휴가를 못 가요. 가도 겨우 3∼4일 정도예요. 휴가 다녀오는 걸 겁내는 요리사도 많아요. 휴가 다녀오면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거든요. 요리사는 매일 일정량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하는데 휴가 때 그게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식당으로 돌아오면 갑자기 맥이 탁 풀리면서 “이 일은 절대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100퍼센트 모든 요리사들이 그래요. 시스템에 정상적으로 적응하려면 사나흘 걸려요.

휴가철 때마다 사표를 내고 떠나

나는 휴가철이 되면 늘 식당에 사표를 냈어요.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올 거다” “2개월 간 일본에 갔다 올 생각이다” 그래요. 그리고 “그 때도 내가 필요하면 다시 전화를 하라”고 해요. 거의 전화가 왔어요. 나 혼자 휴가를 길게 다녀오는 거예요. 식당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주방장들은 일하고 있을 때 얼마나 믿음직스럽게 일을 하는가, 얼마나 부지런한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게 그 사람의 ‘가치’인 거지요.

내가 도자기 작가로 활동하고 있을 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도자기를 만들면 돈 생길 데가 없어요. 그러면 식당에서 ‘고용 총잡이’로 일을 하는 거예요. 식당이 새로 문을 열면 일 잘하는 요리사가 필요하잖아요. 그러면 딱 석 달에서 여섯 달 정도만 일을 해요. 왜냐하면 식당 문을 열고 석 달에서 여섯 달 사이에 평론가가 들이닥치거든요. 그때 잘해야 해요. 나는 돈을 많이 달라고 해요. ‘러닝 개런티’ 같은 거도 있어요. 평론가에게 별 하나를 받으면 돈을 얼마 더 받고, 별 세 개를 받으면 얼마를 더 받고 …. 내 요리를 하는 건 아니에요. 절대적으로 주방장이 요구하는 요리를 해요. 주방장과 부주방장은 저녁에 바쁘니까 나는 아침에 출근해서 소스 같은 걸 만들어요. 열 시쯤 부주방장이 출근하면 소스 만든 걸 보여줘요. 그리고 세 시쯤 퇴근해요. 그렇게 번 돈으로 다시 도자기를 만들었어요.


여름이 되면 휴가 삼아 여행을 많이 다녀요. 지금도 생각나는 두 가지 여름 음식이 있어요. 첫 번째는 멕시코에서 먹었던 옥수수예요. 어떤 할아버지가 길거리에서 숯불에 구운 옥수수를 팔고 있었는데,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숯불에 구운 옥수수에다 칠리와 마요네즈 같은 걸 발랐는데 그 조화가 기막혔어요. 옥수수도 얼마나 신선한지 좀전에 밭에서 딴 것 같았어요.

두 번째 기억나는 건 프랑스 프로방스에 있는 미슐랭 투스타 식당(Le Moulin de Mougins)이에요. 한 3∼4년 전 여름이었어요. 로저 버지가 요리사였는데 아주 유명한 사람이에요.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예요. 나는 전부터 그 사람을 알았어요. 책을 통해서 …. 그 사람 레서피로 요리도 많이 했어요. 책도 한 권 들고 갔죠. 들어가서 곧바로 인사를 했어요. “나는 뉴욕의 ‘프로방스’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고, 지금은 한국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스스무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너무 반갑게 나를 맞아줘요. 주방까지 구경을 시켜줬어요. 첫 번째 나온 요리가 뭔지 알아요? 토마토였어요. 그냥 토마토예요. 껍질만 벗겼고 바질 퓨레를 주위에 살짝 뿌린 거 말곤 아무런 장식도 없어요. 그런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조금 있다가 로저가 우리 식탁으로 왔어요.

“오늘은 제가 키운 토마토 중에서 제일 맛있는 걸 스스무에게 드렸습니다.”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로저의 말을 듣고는 눈물이 났어요. 식당 안에 손님이 한 200명 쯤 있었는데 내게로 걸어 와서 그런 얘길 하니 눈물이 나지 않겠어요? 모든 요리가 맛있었어요. 좋은 식당이란 값싼 재료와 비싼 재료를 이용해서 간단한 요리와 복잡한 요리를 낼 줄 알아야 해요. 로저는 모든 재료를 관리해요. 토마토도 직접 키운 것이고 바질 같은 허브도 직접 키워요.

아무런 장식도 없는 토마토의 감동

마지막 후식 때는 식당에 있는 모든 디저트를 가져다 줬어요. “먹고 싶은 걸 다 먹어보라”고 했어요. 나는 디저트란 오르가슴이라고 생각해요. 요리의 클라이맥스예요. 만약 푸아그라에서 만족하는 사람이면, 디저트를 맛보지 않고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섹스를 모르는 사람이에요. 음식이랑 섹스는 똑같은 거예요. 로저의 디저트는 정말 맛있었어요.

로저와 헤어질 때 책에다 사인을 받았어요. 아마 다시는 볼 수 없을 거예요. 헤어지면서 그렇게 느꼈어요. 일생에서 단 한 번뿐인 만남일 거라고. 나는 고맙다고, 잘 지내라고 인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정리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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