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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만 만나면 싸워요, 잘못을 뿌리뽑을 때까지 싸울 거예요.”

등록 2007-08-22 17:50수정 2007-08-22 18:02

“남친만 만나면 싸워요.”
“남친만 만나면 싸워요.”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 “사랑이 아냐, 그건 폭력이거든”

Q

24세 여성입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남친은 툭하면 짜증내고 헤어지자고 하는 저를 다 받아주었습니다. 온 마음으로 절 좋아해 준다는 확신이 있으니 제가 더 심해지더군요. 그러던 남친이 점점 지쳐서 예민해지고 짜증과 싸움이 늘어갑니다. 몇 시간, 며칠이고 싸우고 헤어지자 합의했다 또 싸우고…. 악순환이 멈추질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 잘 맞는 사람을 만나도 전 싸울 겁니다. 싸우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고 생각해요. 서로를 위해 덜어 내고 채워 주는 과정이기에 내 연인과 행복하기 위해 전 꼭 싸울 겁니다. 그런데 남친은 제가 부탁한,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말과 행동들을 반복합니다. 그것만 안 해도 싸움이 줄 거라 말해도 “미안하다 하기도 이제 지쳤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이제는 저랑 얘기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네요. 전 우리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뿌리를 뽑아 고치고 싶은데 남친은 그냥 한번 넘어갈 수 없냐며 화를 냅니다. 그리고 다음날엔 웃으며 장난칩니다. 싸웠으면 진지하게 대해 달라 그렇게 부탁을 했는데도 안 되네요. 저로선 모든 걸 참는 전 이미 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직을 신조로 삼기에 마음에 담아 두는 건 거짓말하는 거라 생각해요. 저라는 ‘자아’를 포기하고 참는 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일까요.

A
1. 거, 사람 차암- 힘들게 연애하시네.
사연만 읽는데도 내가 다 지쳐요. 당신, 당신 애인 해먹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나. 모른다고 봐. 한번 따져보자고.

2. 우선, 당신 주장과 그 논거들, 죄, 모순 덩어리야. 보까. a) ‘아무리 좋은 사람, 잘 맞는 사람 만나도 싸운다. 안 싸우면 발전이 없으니까.’ 미쳤나. 좋고 잘 맞는 사람 만나자고 다들 그 고생인 게야. 그런 사람 만났으면 그 자체로 대단한 행운이라고. 감지덕지해야지. 시도 때도 없이 물고 빨고 해야지. 그 아까운 시간을 왜 싸워서 증발시켜. 이종격투기 하나. 싸워서 발전하게. 그리고 좋고 잘 맞으면 이미, 행복해야 하는 거예요. 당장의 행복을 왜 유보해. 손에 쥔 행복도 제대로 간수 못하는 주제에, 그게 얼마나 아까운 건지 모르면서, 어떻게 나중에 행복해지나. 것두 매-일 싸우면서.


b) ‘모든 걸 참는 건 내가 아니다. 자아를 포기하는 거다. 마음에 담아 두는 건 거짓말이다. 정직이 신조라서 그렇게 못 한다.’ 이야, 이런 로직의 자기합리화는 또 처음 봐요. 그러니까 난 정직해 못 참으니까 너만 참으라는 거 아냐. 어머, 그럼 참는 건 부정직이네. 참는 자여 화 있나니 지옥이 너희 것임이라, 이거네. 아이 깜짝이야. 게다가 자존이 무너지신다. 아니죠. 어서 발명된 ‘자존’인지 몰라도 우리 사바세계에선 화나는 대로 화내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해 버리는 거, 그거 ‘성깔’이라고 해요. 성깔.

c) ‘남친, 뿌리뽑아 고치겠다. 우리 행복한 미래를 위해.’ 개인적으로 이 대목은 아주, 무서워요. 아니 남의 뿌리를 지가 왜 뽑아. 애인이 고구마야. 그리고 그 ‘우리’ 위한다는 법을 왜 당신 혼자 제정해. 그거 그냥 당신 법이에요. 그 법에 의거 ‘미래’ 위해 하사하시는 힐난·지침·계도·질책, 상대가 싫다 하잖아. 왜 싫다는 애를 당신 박스에 꾸겨 넣어. 경추 접힌다고 비명 지르잖아. 안 들리나.

이런 말 들으니까 억울하시나?

3. 억울할 거 하나도 없다.
당신, ‘우리·사랑·미래’라는 상징의 해석 권한, 독점하고 있다. 그렇게 구축한 독자가치체계로 우월적 지위 확보해 상대, 추궁한다. 중세 사제가 딱 그랬다. 신으로 가는 길목 차단하고 신의 뜻 해석 권한, 독점했다. 자신들 편의와 욕망을 신의 뜻과 등치시킨 일대 사기극. 당신, 마찬가지다. 스스로 직조한 ‘사랑’의 사제복 착용하고 혼자 창안한 율법으로 상대를 일방 통제한다. 그게 어떻게 교젠가. 교정, 교화지.

김어준 / 박미향 기자
김어준 / 박미향 기자
그리고 애인, 남이다.

그리 말하면 사랑에 대한 모독으로 들리나. 아니다. 애인이 남인 걸 인정 않고 어른의 사랑, 못한다. 남, 자기 뜻대로 못 하는 거다. 사랑, 단점과 차이를 없애는 거, 아니다. 그에 개의치 않는 거지. 게다가 사랑이란 게 영원도 완벽도, 않다. 불완전한 인간끼리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지. 그게 된다는 상상까진 좋다. 그러나 그 판타지를 상대더러 실제 구현해 내라는 강요, 그거 폭력이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 수용할 수 없는 자,

사랑 말할 자격도 없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거든, 당신 수용한계 초과하거든, 헤어지는 게, 옳다. 사람, 고쳐 쓰는 물건 아니다. 당신이 뭔데. 당신의 통제강박과 일장훈계를 오로지 사랑이라 간주하고 당신에게 기꺼이 포박, 훈육되고 싶어 하는 자 만나시라. 그래서 실컷 인간개조 해주시라. 아마 있을 게야. 없으면. 그럼 니가, 하와이 가야지 뭐.

PS - 지금 남친은 인류애 차원에서 하루 빨리 석방해 주시라. 걔 그러다 오래 못 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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