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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히말에서 눈을 씻었는가

등록 2007-10-31 22:31수정 2007-11-04 11:42

안나푸르나 트레킹 길. 뒤쪽으로 보이는 설봉은 닐기리(6940m)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길. 뒤쪽으로 보이는 설봉은 닐기리(6940m)다.
[매거진 Esc]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골짝의 산간마을을 가로지르는 안나푸르나 좀슴 트레킹
북위 28도46분889초, 동경 83도43분398초. 네팔 좀슴(해발 2713m) 공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위성 추적장치(GPS)에 찍힌 좌표다. 포카라에서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로 불과 30여분 만에 닿았다.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온 트레커들은 올라갈 사람들과 내려갈 사람들이 좌우로 갈려 순식간에 흩어진다. 하지만 나는 게으른 여행자답게 차부터 한 잔 마시면서 좀슴에서 하루를 묵기로 결정했다. 마을 제일 북쪽 끝 로지에 숙소를 정하고 나서 발걸음도 가볍게 북쪽 카그베니로 이어지는 트레일을 따라 반나절 트레킹을 했다. 이 지역은 티베트 고원의 남쪽 끝자락이어서 건조하고 사막 같은 풍경이다. 저만치서 ‘뎅뎅’ 종소리를 내며 등짐을 진 조랑말 행렬이 내려온다. 오후에 여기를 지난다면 무스탕 지역에서 내려오는 티베트 사람들일 텐데 …. “타쉬델렉!” 인사를 하니 “타쉬델렉!” 되받는 목소리가 꾸밈없이 쾌활하다.

티베트-인도 대륙을 오가던 타칼리족의 고향

안나푸르나 히말라야의 대표적인 코스인 좀슴 길은 칼리 간다키 골짝 마을들을 잇는 길이다. 칼리 간다키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1(8091m)와 다울라기리(8167m) 두 큰봉우리 사이를 불과 폭 38㎞로 가르고 흐르는 강이어서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계곡으로도 유명하다.

좀슴에서 내려오는 트레일 초입은 하천 유역 북쪽 지대여서 건조한 계곡 자갈길이다. 마르파부터는 계곡 자갈길과 절벽의 메마른 산길이 반복된다. 여기서부터 칼로파니까지 이어지는 트레일은 여전히 고도 2500m 이상이고 시야가 탁 트였다. 담푸스 피크(6012m), 투쿠체 피크(6920m), 다울라기리, 닐기리(6940m) 등 양쪽으로 펼쳐진 히말라야 설봉들을 보면서 진행하니 지치지가 않는다.

이 구간의 중간쯤에 타칼리족의 중심 마을인 투쿠체가 있다. 타칼리족은 오래 전부터 칼리 간다키 계곡에 터를 잡고 살면서 티베트와 인도 대륙을 오가던 ‘소금 무역’의 중개상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그러니까 좀슴 트렉은 타칼리족의 고향인데, 1959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 후 티베트 국경이 봉쇄된 이후로는 대부분 트레커들을 상대로 한 로지나 찻집을 운영하며 산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트레킹도 많이 찾는 코스다. 솔루-쿰부 코스의 산길.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트레킹도 많이 찾는 코스다. 솔루-쿰부 코스의 산길.
라르중에서 구름다리를 건너면 칼로파니(2530m)다.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사우스(7273m), 팡(7647m),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 설봉들이 멋지게 펼쳐지는 마을이고 이런 풍광을 배경으로 들어선 훌륭한 로지들도 많아서 트레커들이 많이 묵는다. 로지의 저녁 식탁에 모인 손님들은 일본인 한 사람, 독일인 둘, 그리고 우리(나와 나의 그녀)뿐이었다.

손님들은 밑에다 화로를 둔 커다란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앉게 되었다. 내가 정한 메뉴는 이름도 멋지고 값도 무려 300루피(1루피=약 14원)나 하는 ‘안나푸르나 파라다이스’였다. 그런데 내 옆에 앉은 독일인이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낸다. ‘음식이 예사롭지 않겠구나’ 싶었지만 메뉴를 수정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여행길에서 밥 한 끼는 중요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웬만하면 꿀맛이기도 하니까. 그리하여 일단 내 앞에 놓인 음식은 거창한 제목에 비하면 그 모양은 소박한데, 내용은 마요네즈로 버무린 과일 샐러드 속에 볶음밥이 한주먹 정도 들어 있는 것이다. 한 입 뜨고 그 달고도 시큼한 맛에 괴로워할 새도 없이 옆 자리의 독일인이 맛이 어떠냐고 묻는다. 나는 끝까지 다 먹을 수는 없겠다고 답하고는 얼른 찐 감자 한 접시를 더 주문했다. 덕분에 우리는 찐 감자를 나눠먹으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는 히말라야의 전망대다. 포카라 향자 마을에서 본 안나푸르나 히말.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는 히말라야의 전망대다. 포카라 향자 마을에서 본 안나푸르나 히말.
아슬아슬한 절벽 길모퉁이에서 발을 삐다

칼로파니를 떠나 얼마 지나지 않으면 푸른 숲이 시작되면서 레테 콜라로 접어든다. 레테 마을(2430m)에서 보이는 다울라기리 남쪽 면이 장대하다. 하지만 잠시 바라만 보고, 어서 절벽 길을 걷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산사태로 무너진 절벽의 흙길이 한 사람이 간신히 걸을 만큼 좁고, 바로 그 위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맨발에 맨손으로 돌을 주워 나르며 새 길을 닦는 중이다. 그런데다 밑에서는 등짐을 주렁주렁 멘 조랑말 행렬이 줄줄이 올라온다. 완전 ‘트래픽 잼’(traffic jam)인데, 절벽 길모퉁이에서는 행렬을 이탈한 말 한 마리가 고개를 외로 꼬고 절대로 안 걷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서 있다. 힙합 패션의 타칼리 청년이 아무리 얼러도 꼼짝 않는다.

나는 그 사이를 비집고 모퉁이를 아슬아슬 돌다가 돌멩이를 삐딱하게 디디면서 그만 발이 옆으로 꺾여 삐었다. 그 고집불통의 말은 등에 진 가스통 하나를 떼어내 주니까 그때서야 갈 길을 가던데, 나는 발목이 시큰한 게 예정대로 갈 길을 갈 수 있을까 좀 불안하다. 삼촌과 조카 사이라는 우리의 포터(짐꾼) 둘은 맨발에 조리를 신고 그 큰 짐을 메고 잘도 걸어간다.

조랑말은 트레커들의 짐을 져 나른다.
조랑말은 트레커들의 짐을 져 나른다.
타칼리족의 마지막 마을(올라오면서는 첫번째) 가사(2120m)까지는 비교적 안정적인 길이고 오후에도 위에서만큼 바람이 세차지 않다. 그런데 어느덧 무릎까지 슬슬 시큰거린다. 내가 사진가라서 가뜩이나 진행이 더딘데, 어슬렁어슬렁 스키스톡에 의지해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우리의 셰르파(종족명이지만 산악 가이드와 동격으로 쓰인다) 왕추는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사실 적당히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걸어야 지루하지 않고 힘도 덜 들기는 하다. 결국 당일 예정인 ‘따또빠니’까지 못 가고 다나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다나(1400m)는 좀슴 트렉에서 고도가 낮은 지대에 있는 마을이어서 나무에 초록이 무성하다. 로지에서 저녁을 함께 먹은 페루인 트레커는 나야 풀에서부터 올라오는 중인데 고라파니(2750m)를 넘어오느라 발이 다 부르텄단다. 사실 나도 속으로는 고라파니 구간을 염려하는 중이었다. 하루에 1200m가 넘는 고갯길을 올랐다 내려가야 해서 좀슴 트렉에서 가파르기로 악명 높은 지점이다.

다나에서 따또빠니(1190m)까지는 불과 200m 정도밖에 고도차가 나지 않는 내리막길이지만, 나는 아픈 다리를 건사하는 데 신경이 많이 쓰인다. ‘따또+빠니’(뜨거운 물) 온천수에 발을 담그는 정도로 개선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할 수 없이 따또빠니에서 서쪽의 베니로 빠져나가는 루트로 바꾸고 베니에서 차를 빌려서 포카라로 가기로 결정했다.

따또빠니에서 베니로 이어지는 길이 사실 칼리 간다키 본류를 따르는 트레일이긴 한데, 동쪽의 가르 콜라 계곡, 즉 고라파니 구간이 있는 트레일이 안나푸르나 히말 풍광이 좋기 때문에 대중적인 루트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특히 이 구간에 있는 푼힐(3210m)은 안나푸르나 히말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푼힐 트레킹’이라는 단기 루트가 개발되었는데, 시간은 부족하지만 트레킹의 묘미를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안나푸르나 코스. 히말라야 산간 지역에서는 조랑말이 중요한 운송수단이다.
안나푸르나 코스. 히말라야 산간 지역에서는 조랑말이 중요한 운송수단이다.
햇살 가득한 테라스에서 맞이한 히말

베니는 북쪽의 좀슴 트레일과 서북쪽의 돌포 지역의 트레일이 만나는 곳이다. 예전에는 큰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소도시 모습이다. 베니에서 바로 포카라로 가려니까 좀 아쉬워서 소남이 살고 있는 데우라니를 들렀다. 소남은 1989년 내가 처음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했을 때 셰르파였던 친구다.

데우라니는 사랑코트(히말라야 뷰포인트) 바로 옆 구릉지에 자리잡은 아담한 산간 마을이다. 사랑코트 못잖게 안나푸르나 히말이 눈앞에 좍 펼쳐진다. 무거운 트레킹 신발을 벗어던지고 햇살 가득한 테라스에서 코앞에 펼쳐진 안나푸르나 히말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있자니,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진정 휴식이었다.

좀슴(네팔)= 글·사진 여동완/ 사진가


계곡을 가로지르는 이런 구름다리는 특히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에 많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이런 구름다리는 특히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에 많다.
3000m, 쉬엄쉬엄 올라볼까

고되지만 누구나 도전해 볼 만한 히말라야 트레킹

히말라야 트레킹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히말라야 관광 상품의 하나다. 설산 봉우리를 점하는 ‘등정’이 아닌, 히말라야의 산길을 도보로 여행한다는 의미인 ‘입산’의 개념이다. 트레킹은 그 과정을 즐긴다. 필사적인 노력을 해서 어떤 지점에 닿아야 하는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하이킹과는 분명히 다른 고된 산행길이긴 하다. 그래서 ‘Trekking’이라는 별도의 용어를 써서 구분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트렉’(Trek)의 어원은 아프리카말이다. 19세기 초부터 영어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당시 남아프리카 식민지배에 나선 네덜란드인들이 소달구지를 타고 고단하게 여행하던 전통에서 유래된 것이, 히말라야 산행의 고단함에 적용되어 ‘고된 도보여행’이라는 의미로 전환됐다. 그런 의미에서 히말라야 트레커의 원조는 설산을 가로질러 티베트와 인도를 넘나든 무역 대상들인 셈이다.

히말라야 트렉 루트에서 가장 높이 올라가는 코스는 에베레스트 루트의 베이스캠프(5550m)지만, 보통은 산간 마을이 있는 3000m를 웃도는 정도이고 2000m 내외인 가벼운 코스도 있다. 하루에 보통 7∼8시간을 걷는다. 그러나 대부분 1∼2시간만 걸으면 나타나는 찻집에서 다리쉼을 하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사람은 물론 어린이에게도 큰 어려움은 없다. 컨디션에 따라서 몇 번이고 원하는 대로 쉬어 가면서 갈 만하고, 그래서 늦어지면 예정지보다 앞선 마을에서 묵으면 된다. 그러므로 이런저런 변수를 생각해서 트레킹 일정은 하루 이틀 여유를 두는 게 좋다.

네팔 트레킹 쪽지

지금이 떠나기에 적당

◎네팔의 트레킹 지역은 보통 5개 구역으로 구분한다. 안나푸르나 히말, 랑탕 히말, 솔루-쿰부 히말(에베레스트), 이 세 지역이 일반적인 트레킹 루트가 개발된 지역이고, 동부 에베레스트 지역과 극서 지역은 경험과 시간이 좀더 필요한 어려운 지역이다. 그러므로 처음 트레킹을 해 보는 사람은 루트가 안정된 앞의 세 지역을 먼저 가는 게 좋다. 트레킹 시즌은 우기가 막 끝난 뒤인 9월 말부터 이듬해 우기가 시작되기 전 4월까지 이어지는 건기가 적당하다.

◎트레킹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는 시간과 비용, 트렉 루트, 건강 상태 등 여러 가지를 종합해 판단한다. 일단 가는 방법만 보면 트렉의 출발지까지 가는 교통편을 선택해야 하는데, 보통은 시간을 절약하는 비행기를 이용한다. 네팔 국내선 비용이 편도 50∼70달러 내외로 비싸지 않아서 크게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렉을 어떻게 재단을 하느냐에 따라서 트레킹을 시작하고 끝내는 지점이 매우 다양한데 트렉의 특정 지점까지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카투만두 현지 여행사를 이용하면 국내 여행사 패키지보다 저렴하면서 취향에 따라 트레킹 코스와 일정도 조정해 준다. 한국인을 상대로 20여 년 동안 여행사를 해 온 아말 샤히(raikatours.com)와 앙 댄디 셰르파(nepaltourstrek.com) 등의 경우 능숙한 한국어 안내를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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