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우트>(2007)
[매거진 Esc]김중혁의 액션시대
<스카우트>(2007)
대학 때 운동 좀 했다. 축구나 야구나 골프 같은 ‘운동’이 아니라, 마스크 쓰고 돌멩이 던지며 전투경찰 아저씨들을 피해 다니는 ‘운동’을 좀 했다. ‘사기 치지 마, 너처럼 다른 사람 사는 거에 관심 없는 녀석이 무슨 운동을 해, 도저히 못 믿겠다!’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래서 진작 말하지 않았는가. ‘좀’ 했다고. 정말 좀 했다. 잠깐 발을 담갔다가 깜짝 놀라 얼른 뺐다. 그 짧은 경력 와중에 ‘학생회의 간부’로 잠시 일하기도 했다. 홍보차장이라는 직함이었는데, 하루 종일 대자보 쓰는 게 일이었다. 지긋지긋했지만 그때 대자보 썼던 경험을 살려 군대에서는 차트병으로 잠시 활약했으니, 역시 인생에서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때 학생회 간부들의 주업무 하나가 ‘총학생회 사수’였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총학생회로 침입하여 난동을 부리고 자료를 파괴하는 무리로부터 사무실을 사수해야 했다. 밤새도록.
나도 딱 한 번 총학생회를 사수하느라 밤을 새어 본 적이 있었다. 밤을 새웠다고는 하지만 별달리 하는 일은 없었다. 한쪽 구석에 비상 무기인 각목을 세워 놓고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선배들은 밤새 전설 같은 이야기들로 우리를 졸리지 않게 해주었다. 총학생회 사무실로 들이닥친 일군의 무리들과 세시간 동안 벌였던 혈전, 기습을 기습으로 맞받아쳤던 두뇌싸움 등 삼국지를 능가하는 스펙터클이 따로 없었다. 선배들의 이야기에서 가장 자주 등장했던 단어는 바로 ‘체대생’(체육대 학생)이었다. 그들은 선배들의 ‘주적’이었다. 이야기 속의 그들은 건장했고 무식했고 야비했고 능수능란했고 무모했으며 잔인했다. 밤이 깊어 선배들이 잠들었을 때 나는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상상 속의 체대생은 점점 커져 내 몸의 두 배가 됐다. 금방이라도 체대생들이 저 문을 열고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를 보고 극장을 나설 때 그때의 ‘체대생’이 떠올랐다.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말할 수 없지만, 영화에는 임창정과 체대생의 액션 명장면이 하나 등장한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아, 그 장면을 말하는구나!’ 하고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못 본 사람이라면 꼭 보시길 바란다. 임창정의 액션을 보고 나면 눈물이 난다. 내가 상상했던 체대생이, 실은 무식한 괴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난다. 야구영화인 줄 알고 <스카우트>를 보러 갔는데, 아니었다. 야구영화인 건 맞는데, 80년 광주에 관한 영화이기도 했고 폭력에 관한 영화이기도 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때 이야기로만 들었던 체대생들은 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하긴, 밤새 전설을 이야기해 주었던 선배들의 근황도 모르는 판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도 ‘80년 광주 액션’의 상처는 깊고 크다. 함부로 방망이 휘두르지 말 일이다.
김중혁 객원기자
김중혁의 액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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