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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는 삼위일체에 맞서…

등록 2008-01-16 17:43

과일 향의 산미가 도드라진 ‘다동 커피집’의 에스프레소. 사진 이명석
과일 향의 산미가 도드라진 ‘다동 커피집’의 에스프레소. 사진 이명석
[매거진 Esc] 이명석의 카페정키

홍대 앞은 풍성한 카페의 숲. 일주일에 하나씩은 새로운 나무가 솟아나는 듯하다. 어느 날 그 숲에서 근사한 나무를 발견했다. 가정집을 개조한 듯 여유로우면서 상냥한 분위기, 기분 좋은 나무 테이블에 서로 다른 디자인의 세련된 의자, 벽에는 느낌 좋은 아티스트들의 작품까지 … 홍대 앞에 딱 어울리는 가게였다.

한껏 부푼 마음. 나는 늘 그렇듯 첫번째 선택으로 ‘커피의 심장’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내 심장에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원형탈모증에 걸린 듯 흔적만 엷게 떠 있는 크레마, 그 아래 멀건 검은 물 …. 금세 일본 공포영화 <링>의 사다코가 튀어나와 목을 조를 것만 같았다. “누가 에스프레소 같은 걸 시키랬어? 우유랑 시럽 팍팍 넣은 달달한 걸 마시란 말이야.”

한때 나도 에스프레소는 지옥의 음료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나 같은 변두리 미각은 한약을 마시듯 눈 딱 감고 들이킨 뒤, 0.3초 이내에 설탕과 물로 입안을 소독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 땅에 맛없는 에스프레소를 퍼붓는 삼위일체가 존재함을 깨닫는다.

하나, 시애틀 계열의 커피 전문점. 이들은 고객들이 우유와 시럽을 넣는 걸 전제, 쓴맛이 강하고 풍미는 떨어지는 에스프레소를 만든다. 둘, 급조된 카페 오너와 바리스타들이 인테리어나 라테아트 같은 외형에 치중, 그 비싼 기계로 우린 커피와 다를 바 없는 에스프레소를 만든다. 셋, 에스프레소의 맛을 즐겨볼 기회를 잃은 고객들이 그 커피를 용서해준다.

내가 가끔 에스프레소 번개로 삼위일체를 붕괴시킬 동지를 만드는 수순. 일단 설탕 없는 카페라테. 다음엔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 우유 거품만 살짝 얹은 마키아토. 최종적으로 순수한 에스프레소. 이때 정통파만이 아니라, 강한 개성의 맛을 비교하도록 만들면 더욱 좋다. 미디엄 로스팅으로 과일 향의 산미를 살린 ‘다동 커피집’이나 직화한 수마트라를 잘게 갈아 좋은 흙 맛을 내는 ‘테이크아웃 드로잉 카페’ 같은 곳이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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